50회 썩어지는 한 알의 밀알들

공자(孔子)와 그의 제자 자로(子路)가 지인의 장례식에 함께 문상하면서, 자로가 공자에게 물었다. “선생님, 감히 여쭙는데 도대체 죽음이란 무엇입니까?” 이에 대해 공자는 “삶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 (未知生 焉知死, 미지생 언지사)”라고 대답하였다.

공자는 내세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고 하며, 현실의 삶에서 사람의 도리를 다하며 충실히 살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가르쳤다. 돌아가신 부모님께 성대하게 차려드리는 제사보다도, 지금 우리 곁에 살아계신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이 최선의 삶이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우리 주변에도 부모에게는 불효하고, 형제들 간에는 불화하면서 조상의 묘를 크게 만들고 제사를 거창하게 드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종교는 공자가 현재의 삶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과 같은 맥락에서, 오늘 우리가 무엇을 믿고 어떻게 사느냐가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고, 죽음 이후의 삶을 결정한다고 믿는다. 우리는 죽음이 무엇인지 또 죽음 이후의 삶은 어떠한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커튼 사이로 들여다보듯이 성경 말씀의 가르침을 통해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서 조금씩은 알고 있다.

기독교는 어느 종교보다도 인간의 삶과 죽음에 매우 깊은 관심을 가진 종교이다. 기독교에서는 성탄절과 부활절을 최고의 절기로 여긴다. 이제 곧 다가오는 부활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심을 기리는 날이다. 지금은 교회가 사순절로 지키는 절기인데, 사순절은 일요일을 제외한 40일 동안 부활절을 준비하는 기간을 가리킨다. 신자는 이 기간 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삶을 배우며 본받는 기간으로 지킨다.

기독교에서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있다. 예수님은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요한 15:13)라고 가르치셨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친구라고 부르시며 친히 십자가에서 죄인들을 대신하여 죽으시며 최고의 사랑을 보여주셨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서 죽으면 열매를 많이 맺는다.”(요한 12:24)라고 가르치시며 이 세상에서 썩어지는 밀알 같은 삶을 살라고 하셨다. 따라서 참되게 믿으려 애쓰는 신자들은 예수님의 발자취를 본받고 따르면서 봉사와 섬김을 실천하며 살아간다. 이 가르침을 따라서 기독교는 세계의 여러 종교 중에서 가장 많은 봉사와 섬김을 실천하는 종교가 되었다.

한국의 통계 자료에 의하면, 헌혈자의 80%가 개신교인들이고, 사회적 재난에 대한 기부도 개신교가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또 호스피스기관의 거의 전부가 개신교 교회기관이고, 사회복지법인의 경우도 개신교가 50%를 차지하고 천주교까지 포함하면 기독교가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비록 일부 성직자와 종교인들의 일탈 행동으로 인해 기독교가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그래도 대다수의 기독교인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태 22:39)’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가장 잘 실천하며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베를린에 위치한 비영리 사회복지 사단법인 “해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정신을 가진 차세대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들이 모여서, 파독 근로자 어르신들에게 전인적인 건강과 요양에 도움을 드리려는 마음으로 2015년에 모여서 처음 시작하였고, 2016년에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정식으로 등록하였다.

해로의 발자취는 그야말로 “한 알의 썩어지는 밀알”이 되려는 마음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걸음을 걸어왔다. 파독 1세대 어르신들의 도움 요청이 점점 더 많아지는 상황에서, 준비된 봉사자도 재정도 조직도 없이, “서로 사랑하라”는 주님의 지상명령에 순종하여, 오직 돕고 섬겨야 한다는 책임감과 열정만 가지고 시작했다.

사무실도 없이 열악한 재정과 부족한 인원으로 시작하였기에, 쌀알 하나가 열 번 구르는 것보다 밤톨이 한 번 구르는 것이 낫다는 말을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서두르지 않고 묵묵히 섬기며 달려온 7년의 시간 동안, 밤톨만큼은 아니지만 조금씩 조금씩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어려운 재정 상황으로 상근직원을 두지 못하고 있지만, 다양한 분들이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며 힘을 보태고 있다.

독일법 제도 내에서 한인 어르신들을 돕는 봉사 단체가 베를린의 사단법인 “해로” 외에는 없는 상황이다 보니, 아직도 작고 부족한 단체지만, 그 역할과 필요성만으로 교민 사회에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그로 인해 도움이 필요한 어르신들을 전보다 더 많이 만나서 도울 수 있게 되었고, 이제는 해로의 사무실을 찾아와 문을 두드리시는 어르신들이 날마다 늘어나고 있어서, 몸은 고되지만 큰 보람을 느낀다. “해로”에서는 인원과 자원에 비하여 참으로 다양하고 많은 일을 한다. 많은 봉사활동을 지속적이고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자원봉사자가 계속 충원이 되어야 하는데, 자원하는 봉사자가 많지 않다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로”는 큰 꿈을 가지고 있다. 일차적으로는 베를린 지역의 어르신들을 잘 섬기는 것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더욱 발전시키며 잘하려고 한다. 그다음은 독일의 주요 거점 도시마다 해로와 같은 봉사 단체가 생기도록 돕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을 키우고, 지역마다 “한 알의 밀알”이 되려고 헌신하시는 분들이 해로와 같은 법인을 설립하도록 도와주고, 지금까지 “해로”가 봉사하며 축적해온 노하우들을 전수하려고 한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모든 파독 1세대 어르신들부터 도움이 필요한 분이면 한 분도 열외 됨이 없이 섬기는 날이 오도록 발전시켜 나가는 꿈을 이루는 것이다. 이 일을 위해서 한인사회의 관심과 지원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한 알의 썩어지는 밀알과 같은 분들이 함께 힘을 합쳐 봉사하고 섬기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도한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한복음 12:24)

박희명 선교사 (호스피스 Seelsor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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