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해로(HeRo)의 빗장을 열다
2015년에 시작된 HeRo(해로)는 ‘우리는 어디서 어떻게 늙어가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코멘트에서 출발했다. 해답은 늘 사람이었다. 그야말로 이국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도움활동의 필요성으로 귀결되었다. <해로>의 입술로 연재를 시작하지만,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재독 동포들의 목소리를 그릇에 담으려 한다. 이 글이 고단한 삶의 여정을 걷는 이들에게 도움의 입구가 되길 바란다(필자 主)
베를린에는 사단법인 <해로>가 있다. 공식 명칭은 Kultursensible Altenhilfe HeRo e.V다.
말 그대로 ‘백년해로(百年偕老)’의 ‘해로(偕老)’다. 함께 늙어간다는 의미인데, 이 말 한 마디로도 위안이 된다. 인생이 고요한 냇물처럼 평탄하면 좋으련만, 뜻하지 않은 풍랑을 만날 때가 있다. 이국땅에서는 풍랑에 대한 체감온도가 훨씬 높다. 그때 손잡아 줄 수 있는 누군가가 되어주는 것이 바로 해로의 역할이다. 기본적으로는 나이들어가는 1세대 파독 어르신들이 그 대상이다.
독일 동포사회는 반 세기 전 파독 근로자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격동의 시간을 이겨낸 경제발전의 뒤안길에는 누군가의 눈물과 땀의 결실이 있었다. 한국전쟁 후 외화벌이를 위해 고국을 떠났던 이들이야말로 일등공신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가족과 자신을 위해 선택한 독일인데, 열심히 살다 눈을 들어보니 ‘어느새 애국자가 되었다’라는 어느 파독 근로자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자의든 타의든 그들은 조국 근대화에 불을 지핀 영웅(HeRo)이다.
그들은 세월의 부추김 속에 반 백년을 잰 걸음으로 달려왔다. 하지만 나이들수록 뼈속 깊이 고국의 정서가 스멀거린다. 게다가 독일은 소수민족인 한인들에게 눈길을 줄 여력은 없다. 2세들도 독립적으로 잘 성장했지만 괴리감이 있다. 언어적 소통의 장벽으로 정작 부모의 고통과 질병 앞에서 한계를 느낀다.
파독 1세대들은 대한민국의 경제발전 과정을 직접 현장에서 공유하지 못했다. 그러기에 발전된 조국은, 6-70년대의 기억에만 남겨진 이들에겐 낯선 세계다. 고향의 추억은 시간의 모래 속에 파묻혔다. 어느 곳에도 뿌리박지 못한 존재의 박탈감은 노년의 외로움으로 나타나고 있다. 파독 1세대들을 위한 체감적 돌봄 시스템이 필요한 이유다.
해로가 팔을 걷어부친 것은 2015년부터였다. 같은 시선으로 같은 목소리를 가진 젊은 차세대 그룹이 힘을 모았다. 어쩌면 이국땅에서 뼈를 묻게 될지 모른다는 스스로의 현주소를 실감했기 때문이리라.
해로의 활동범위는 다양하다. 점차 늘어가는 1세대 어르신들의 도움 요청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자원봉사자들의 필요성이 부각되는 이유다. 시간과 마음을 다해 외로운 어르신들에게 시선을 향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다. 먹고 살기 바쁜 젊은 세대들에게 자원봉사의 가치와 동기부여를 찾아주는 것도 난해하다. 그럼에도 해로의 활동영역은 꾸준히 확대되는 추세다. 그만큼 나이들수록 이국땅에서 같은 언어로 상호 도움과 소통의 중요성을 직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로에서는 호스피스와 일상생활 도움활동, 건강요양상담 서비스, 문화서비스 제공 등이 주 영역이다.
첫째, 호스피스 활동은 말 그대로 생의 마지막을 보내는 이들의 삶의 질과 편안한 동행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고독한 이국땅에서 마지막까지 따스한 손으로 배웅, 죽음의 언덕까지 함께 하는 것이다.
둘째, 일상생활 도움활동은, 질병에 걸려 요양등급(Pflegegrad)을 받고 집에서 생활하는 이들을 돕는 활동이다. 경감급여(Entlasstungsbetrag)의 범위 안에서 집을 방문해 도움을 주고 있다.
셋째, 건강요양상담은 요양등급이나 사전의료의향서 작성 등 의료 및 건강 관련해 독일 의료시스템을 상담하는 것을 의미한다.
넷째, 문화서비스는 나이 든 이들을 위한 배움활동이다. 현재 문화 서비스 활동에는 노래교실, 기타교실(3강좌). 자원봉사자를 위한 독일어 교실 등이 운영되고 있다. 이와 함께 양로원이나 요양시설을 직접 찾아가는 음악회, 지역사회 및 여타 한인단체와 연계된 일들이 있다. 구체적으로는 한인 치매어르신 돌봄, 한인회와 협력한 건강요양상담센터, AOK 지원 자조모임 여가활동, 매년 1회 열리는 ‘치매 예방의 날’ 등이 있다. 치매예방의 날에는 독일 베를린 대학병원의 치매관련 전문의 강좌를 비롯해 어르신을 위로하는 공연 및 건강 강좌 등의 프로그램이 있다.
이와같은 일련의 활동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현실적 어려움이 도사린다. 지속적이고 효율적인 도움활동을 위한 자원봉사자 확충이 절실하다. 또한 효과적인 활동 수행을 위한 한인사회의 관심과 재정 지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앞으로 베를린의 <해로>가 독일 전역으로 확장돼 동포간 소통과 한인들을 위한 체감적인 도움의 창구가 되길 기대한다. 그러기에 마음과 행동으로 해로와 뜻을 같이하는 이들의 두드림을 언제나 환영한다.
박경란/ 사단법인 <해로> 일반 자원봉사팀장 (후원문의:info@heroberlin.de)
교포신문 2020년 2월 28일, 1160호 17면
링크:
[1회] 해로(HeRo) 특별 연재 – 해로(HeRo)의 빗장을 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