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회 벽을 넘어서 희망으로

103회 벽을 넘어서 희망으로

우리 대한민국은 88올림픽을 발판으로 세계를 향해 도약하기 시작하였다. 88올림픽의 주제가는 “손에 손잡고”(Hand In Hand)였는데, 함께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보자는 가사로 세계인의 사랑을 많이 받았었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여전히 벽이 많다. 인종차별을 비롯한 여러 종류의 차별과 편견을 일상생활 가운데 접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런 차별과 편견도 우리가 뛰어넘어야 할 벽이지만, 우리가 서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의 벽도 만만치 않다. 사람들이 쳐놓은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지 못해 속상해하기도 하고, 때로는 내가 쳐놓은 울타리에 내가 갇혀서, 벽인 줄도 모르고 힘들게 살아가기도 한다. 우리가 벽에 부딪혔을 때는, 먼저는 기도하며 지혜를 구하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힘을 모으면 가로막힌 장벽을 넘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을 찾을 수 있다.

  해로의 발자취를 돌아보면, 평탄대로 같은 꽃길을 걸어온 것은 아니다. 아직도 다듬어지지 않은 거칠고 척박한 길을 걷고 있지만, 오직 사명감으로 하루하루를 섬김의 길을 걷고 있다. 길이 없는 곳에서 풀을 걷어내고 돌을 치우며 여럿이 손잡고 앞을 향해 걸어가다 뒤돌아보니 지금과 같은, 작지만 몇 사람은 다닐만한 오솔길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누군가 혼자서 큰 힘을 써서 한 일이 아니다. 작은 물방울들이 모여서 물줄기가 되고 시냇물을 이루듯, 많은 봉사자와 후원자, 편찮으신 우리 어르신들까지 함께 해주셔서 지금의 해로가 되었다. “해로(偕老)”는 ‘함께 복되게 나이 들어간다’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해로의 일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것임을 항상 잊지 않으려고 한다.

  필자는 ‘담쟁이’라는 시를 좋아한다. 길이 없는 곳에서 일을 하다 보면, 도무지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절망스런 벽을 만나기도 하는데, 그때는 담쟁이를 생각한다. “담쟁이는 말없이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벽을 올라간다.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모두가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와 함께 벽을 오르고 올라 결국에는 그 벽을 넘는다.” 벽을 만나거나 문제를 만나면 이 시를 읽는다. 담쟁이처럼 벽을 만나더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조용히 그러나 멈추지 않고 지혜와 힘을 모아 함께 전진하려는 마음을 새롭게 할 수 있다.

  해로가 걸어가고 있는 길은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다. 그래서 걸어갈 때마다 벽을 마주하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하지만 우리가 걸어가는 힘든 발걸음이 뒤에 오는 사람에게 길이 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파독 1세대 어르신들을 섬기고 다음 세대를 세우는 일을 멈추지 않고 계속하려고 한다.

103회 벽을 넘어서 희망으로

  지난 6월 13일에는 본에서 본 한인회와 함께 파독 1세대 어르신들의 건강요양에 대한 순회상담을 하였고, 14일에는 에쉬본에서 교포신문과 함께 건강요양에 관한 설명회와 순회상담회를 실시하였다. 우리 파독 1세대가 연로하여지면서 많은 분들이 요양보호 대상자가 되고 있다. 의료보험 안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제도들이 많이 있는데 모르고 계셔서 도움을 못 받는 분들이 많다. 또한 법적인 서류를 준비하지 않아서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불이익을 당하는 일도 많이 생기곤 한다. 이번 순회상담회에서는 우리 어르신들에게 필요한 요양등급 및 장애등급 신청 서류와 방법을 비롯하여 등급 평가를 받을 때의 주의 사항에 대한 안내도 해드렸다.

  또한 갑작스럽게 치매나 장례와 같은 일이 생겼을 때 미리 준비해야 하는 필수적인 서류에 대해 안내해 드리고 직접 작성도 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에 참석하신 분들은 비교적 건강하셔서 요양보호와 장애등급 신청보다는 예방적 대리권과 사전의료의향서의 필요성에 크게 공감하셨다. 그러나 이렇게 중요한 것들을 주변의 어르신들이 대부분 모르고 있다며 더 많은 홍보와 설명회를 자주 열어달라고 하셨다. 또한 서독지역에도 해로와 존탁스카페의 지회를 만들어 달라는 요청도 많이 하셨다.

  해로도 독일 전역의 파독 1세대 어르신들을 잘 돕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지만, 아직은 섬길 수 있는 재정과 인력이 모자란다. 바람직하기는 어르신들을 섬기려는 마음을 가진 분들이 힘을 모아 해로와 같은 봉사단체를 만들어, 살고 계시는 곳에서 도움이 필요한 어르신들을 섬기는 것이 제일 좋다. 해로가 아직은 작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발전하며 어르신들을 잘 섬길 수 있는 것은, 앞장서서 섬겨 온 한 사람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분들이 손들고 나선다면 해로에서는 우선적으로 적극 도우려고 한다.

  해로가 하는 일은 살다가 벽을 만난 어르신들을 돕는 일이다.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직접적으로 도와드리는 일 외에도, 연로해 가는 1세대 어르신들에게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의미들을 찾아드리며 보람을 드리고, 또 새로운 마음으로 희망을 품고 꿈꾸게 하는 일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비록 아픈 몸과 불편한 삶이라는 벽을 만나더라도 해로의 작은 봉사의 손길들을 통해 삶의 활력을 되찾고 평안하게 지내시도록 봉사자들과 함께 열심히 섬기려 한다. 파독 어르신들을 잘 섬기는 우리의 마음이 변치 않고 신실하다면, 해로도 머지않아 더 좋은 모습으로 더 많은 어르신을 섬기게 될 것이라는 희망의 꿈을 꾼다.

  벽을 오르는 담쟁이처럼, 해로의 식구들이 함께 손에 손잡고 걸어가면 언젠가 벽을 넘어서 소원의 동산에 오르게 될 것이라 믿는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희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다”(시편146:5)

박희명 선교사 (호스피스 Seelsorg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