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회 잊어버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나이가 들면서 깜빡깜빡하는 일이 많다고 걱정하시는 분들이 많다. 자꾸 잊어버리는 것 때문에 불안해하고 건강에 대한 염려로 의기소침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적당히 잊어버리는 것이야말로 인생 후반에 꼭 필요한 지혜라는 것을 알아야 행복한 노년을 보낼 수가 있다. 우리가 알고 있던 세상적인 기준과 다른 사람들의 시선도 적당히 잊어야 한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가지고 있었던 불필요한 의무감과 관계도 의지를 가지고 적절히 취사선택하며 살아야 한다. 그러면 삶이 편안해지고 내 삶에서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어, 더 중요하고 새로운 일을 향해 도전하려는 마음도 생기게 된다. 인생의 후반부에서는 그동안 무겁게 짊어지고 힘들게 살아왔던 것들을 잊으며 내려놓는 연습을 하는 것이 인생을 지혜롭게 잘 사는 것이 된다.
“파레토의 법칙”이라는 경제 용어가 있다. 파레토라는 이탈리아 경제학자가 이탈리아의 부(富)를 20%의 부자가 80%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20%를 잘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해서 유명해진 법칙이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 삶의 많은 부분에 적용되고 있다. 예를 들면, ‘옷장의 옷 중에서 내가 즐겨 입는 옷은 20%에 불과’하고, ‘운동선수 20%가 상금의 80%를 가져간다’와 같은 것이 있다. 이것을 우리의 생활에도 적용하면 우리의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20%뿐이고 80%는 무시하거나 잊어도 커다란 문제가 없는 것들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뇌는 기억을 적당히 잊도록 만들어졌다고 한다. 우리가 지나온 모든 것을 다 기억한다면 오히려 더 힘들어질 것이다. 요즘 대세로 떠오른 AI도 인간 고유의 잊는 능력은 없다. 적당하게 잊을 수 있다는 것이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비결이다. 잊어버리는 것은 인간에게 주신 신의 축복이고 능력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나이 드는 것과 잊어버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고정관념을 버려야 행복할 수 있다.
우리가 치매가 아닌가 하고 걱정하는 종류의 기억은 대부분 “작업기억력”이라고도 하는 “단기 기억”이다. 단기 기억은 어떤 일이 끝날 때까지 일시적으로 기억하는 능력이다. 나이가 들면서 요리할 때 냄비를 불에 올려놓은 것을 잊고 잠깐 다른 일을 하다가 음식을 태우는 경우도 단기 기억 능력이 떨어질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집중력이 떨어져서 자주 실수하는 것도 노화에 따른 자연스런 현상으로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다만, 이런 증상이 심해지지 않도록 잊기 쉬운 것은 기록을 해두거나, 생각이 나지 않는 사람 이름과 같은 것은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계속 기억을 떠올려 찾아내는 것이 좋다. 그리고 독서와 끝말잇기, 숫자를 사용하는 게임을 하면서 머리를 쓰는 ‘뇌 체조’를 하는 것도 좋다.
우리 어르신들이 가장 필요로 하면서도 잘 하지 못하는 것이 핸드폰 사용이다. 핸드폰을 조금 쓸 줄 아는 친구 옆에 있으면 뭔가 모자라는 것 같아 초라해지고 기가 죽는 경우도 있다. 어르신들은 ‘작업기억 능력’이 전에 비해 떨어지기 때문에, 새로운 기계 사용법을 배우는 것이 느릴 수밖에 없다. 앞에서 들을 때는 이해가 되지만 돌아서면 생각이 안 난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다.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젊은 사람들도 그런 사람이 많다. 자녀들에게 핸드폰 사용법을 한두 번 배웠지만 금방 잊어버려서 다시 물어보면, 지난번에 가르쳐줬는데 그것도 모르냐는 핀잔을 받고 자존심이 상해 다시는 물어보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그러나 배운 것을 금방 잊어버리는 것 때문에 기죽을 필요가 없다. ‘너는 늙어봤냐? 나는 늙어 봤다’하는 마음으로 당당하게 어깨 펴고 다시 도전하고 계속 반복하면, 핸드폰 사용이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기 때문에 넉넉히 해낼 수 있다.
“해로”에서는 지난 10주 동안 파독 1세대 남자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첫 번째 “핸드폰 교실”을 진행했다. 교육 정원 10명보다 적은 6명의 어르신이 오셨지만, 오히려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일대일로 개인지도를 받을 수 있어 더욱 효과적인 교육 시간이 되었다. 교육을 받으러 오신 어르신 중에는 기본적인 핸드폰 작동법을 배워야 하는 분도 있고, 배운 것을 자꾸 잊어버려서 배우기 힘들다고 걱정하시던 분도 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배운 것을 잘 활용하고 계셨다.
핸드폰 교육 시간은 1교시는 기본 강의를 하였고 2교시는 배운 것을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배운 것을 손수 다뤄보는 실습 시간으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핸드폰을 사용하다가 궁금한 것을 질문하고 배우는 시간도 계속되어서 어르신들의 핸드폰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는 좋은 교육이 되었다. 해로에서 가장 젊은 봉사자인 박창범 선생이 어르신들의 눈높이에 맞게 차근차근 아주 잘 가르쳐서 어르신에게서 엄지척을 계속 받으셨다. 지난주에 배운 내용을 계속 반복하며 어르신들이 잘 기억하시도록 도와드리는 가운데, 어르신들의 핸드폰 실력은 일취월장 발전하였고 핸드폰 사용에 자신감을 가지게 되셨다. 교육을 마치고 돌아가시는 어르신들을 보면, 마치 커다란 전투에서 이기고 기쁨과 자신감으로 충만하여 당당하게 개선하는 것과 같아서, 교육의 효과를 알 수 있었다. 우리 파독 1세대 어르신들이 행복한 것이 우리의 행복이라는 마음으로 섬길 수 있어 너무 보람된 교육이 되었다. 계속되는 다음 교육을 기대해 본다.
“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하는 일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목표점을 바라보고 달려가고 있습니다.”(빌 3:13,14)
박희명 선교사 (호스피스 Seelsorg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