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호 눈물로 씨를 뿌리면 기쁨으로 거두리
어릴 적에 처음 읽은 시는 동네 이발소 거울 위에 액자로 걸려있던 “푸시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였다. 그때는 삶이 우리를 속인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그냥 외우다시피 읽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픈 날들을 견디면, 기쁨의 날 반드시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늘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에 지나가지만, 지나간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라”
러시아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 푸시킨은 러시아 황제 치하에서 저항시를 썼다는 이유로, 20대의 나이에 7년을 유배지에서 보내야 했다. 유배가 끝나갈 무렵에 이웃에 살던 귀족 소녀의 시화첩에 이 시를 써주었다고 한다. 유배의 힘든 시간을 보내며 그가 줄곧 가졌던 신념을 시로 쓴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라는 한국 현대사를 증언하는 시이기도 하다. 이 시는 이발소와 공장마다, 만원 버스와, 학생들의 책상 앞에 좌우명처럼 늘 붙어있었다. 경제개발을 하면서는 잘살아보겠다는 의지를 품도록 모든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깃발이 되었다. “현재는 슬프지만,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이라는 격려에 힘입어, 모두가 가난하고 힘들었던 시절에 우리 국민에게 위로와 희망을 준 시였기에 많은 사람이 좋아했다. 그리고 현실은 고통스러웠지만, 눈물로 뿌린 씨앗들이 우리에게 “소중한 것”이 되어 돌아왔다.
힘들 때는 누구의 탓인지 싸우기보다는, 미래를 바라보고 모두에게 희망을 주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비전을 보여주는 말이 필요하다.
해로는 올해 설립 10주년을 맞는다. 지금까지 어르신들을 섬기는 많은 일을 해왔지만, 이제는 미래에 밑거름이 되는 의미 있는 일을 더욱 많이 해보려고 한다. 이 일은 재정과 인력이 여유가 없는 상태에서 해야 하는 일이기에 눈물로 씨를 뿌리는 일이 될 것이다.
농사는 사람의 노력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하늘에서 햇빛과 비를 적당하게 주시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그래서 농사는 참 어렵다. 해로가 계획하는 일들도 우리의 힘만으로는 되지 않음을 모르지 않기에 먼저 지혜와 능력 주시도록 기도하며 준비하고 있다.
베를린에는 최근 치매 환자가 많이 늘어 해로와 가족들이 많이 힘들어하고 있다. 또한 요양보호가 필요한 환자들도 크게 늘어서 이분들에 대한 돌봄이 매우 필요한 상황이 되었다.
해로가 오래전부터 기도하며 준비해온 파독 1세대 어르신들을 위한 “쉼터”인 “HeRoHaus”를 3월부터 운영하려고 이번 주에 리모델링 공사와 시설 준비를 시작한다. 120㎡ 정도의 작은 장소이지만 공사에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해로가 단순한 가정 방문형 봉사단체여서 정부나 단체의 재정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기에 공사비 마련을 위해 더욱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최선을 다해 정성껏 준비하여 우리 어르신들이 이용하시기에 편리한 쉼터를 만들려고 한다.
쉼터를 시작하기 전에 이용하실 분들을 대상으로 홍보와 안내를 위한 설명회를 2월 15일에 미리 가지려고 한다. 시작 초기에는 일주일에 이틀 정도만 운영하겠지만, 봉사자가 더 많이 세워지면 주중에 주간보호센터와 같이 운영하려고 한다. 이 쉼터를 통해 우리 어르신들이 맛있는 식사도 드시며 서로 즐겁게 교제하고, 여러 가지 활동을 통해 유익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시도록 도우려고 한다. 잘 준비되어 유용하게 쓰임 받게 되기를 바란다.
해로는 어르신들을 섬기는 일도 하면서, 미래에 우리 어르신들이 더욱 행복한 노년을 보내실 수 있는 일들도 계속 개발하려고 한다. 현재 동아시아 국가인 일본, 베트남의 단체들과 함께 “차-차-차”(Cha-Cha-Cha)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동아시아에서 온 이민자 그룹들이 함께 모여 친선교류를 비롯하여 어르신들의 건강과 여가 활동에 도움이 되는 여러 가지 활동들을 시작하였다. 서로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각 나라의 차와 음식을 나누고, 노래와 체조 등을 같이 하면서 소외와 고립에 빠지기 쉬운 어르신들이 활동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제공하려고 한다. 앞으로 동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 온 어르신들이 함께 참여하는 모임이 되도록 새로운 씨앗을 뿌리려고 한다.
해로는 우리 어르신들을 섬기는 일에 우리 자녀 세대가 함께 참여하도록 세대를 잇는 일에도 관심을 가지고, 세대를 통합하는 봉사가 이루어지도록 다양한 방법으로 노력하고 있다. 이제 우리 1세대 어르신들의 자녀들도 50대가 되었고, 부모님들을 생각하며 보람 있는 봉사의 기회를 제공하고 어르신들과 교류하는 기회도 만들어 가려고 한다. 파독 1세대로 독일에 오신 부모님들의 노고와 헌신에 감사하며, K-Pop이나 K-Culture보다 앞서 독일과 세계에서 인정받은 K-Arbeit가 있었음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다음 세대로 전수하는 일도 하려고 한다.
이번 주말에는 설을 맞아 ‘도담도담 한글학교’ 어린이들이 해로의 어르신들에게 세배하면서 어른 공경의 한국 예절을 배우는 시간을 갖는다. 어린 학생들에게 세배하는 법도 가르치고, 어르신들은 아이들에게 덕담하며 세뱃돈도 주는 행복한 시간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런 활동들이 모여서 세대 통합이 이루어지고 더욱 아름다운 섬김으로 발전할 것을 기대한다.
힘들지만 씨앗을 뿌리지 않으면 열매를 얻을 수 없다. 미래에 열매를 거두는 기쁜 날이 오도록 해로는 오늘도 씨앗을 심는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주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어 주실 것이다”(시편 37:5)
박희명 선교사 (호스피스 Seelsorger)
1396호 16면, 2025년 1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