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회 치매환우와의 소통, 어떻게 할까

어느 파독광부 어르신의 이야기다. 광부생활 3년 계약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가려다 독일 정착을 결정했다. 다행히 직업을 구했다. 매일 갇힌 공간에서 기계만 만지는 일이었다. 하루 종일 딱딱한 기계와 홀로 씨름해야 했던 그는 몇 달이 지나자 미칠 것처럼 답답해졌다. 소통의 부재 탓이었다. 이후 간호사인 아내의 권유로 선택한 것이 간호사 직업교육이었다. 병원 근무를 하면서 그는 비로소 행복했다. 비록 환우들이었지만 소소한 만남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파울 바츨라빅(Paul Watzlawick)은 ‚우리는 매순간 소통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라고 했다. 그만큼 소통은 삶의 기초적 수단이다. 특히 자원봉사 현장에서의 소통은 두 말 할 것도 없다.

최근 <해로>에서는 일반자원봉사 교육 커리큘럼 중에 치매, 경청을 다룬 적이 있다. 치매 환우를 위한 소통이 중요하게 부각되었다. 대부분 고령이 된 한인 1세대들에게서 치매를 심심찮게 발견하기 때문이다. 그들과의 소통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몇 년 전, 파독 간호사 어르신 한 분을 방문한 적 있다. 그는 처음 만난 자리에서 고향을 거듭 반복해서 말했다. 자신의 고향은 ‘쑥곳’이라고 했다. 썰물이 되면 동생들과 바지락을 캤다고 했다. 계속 말을 이어가던 그는 갑자기 호미를 찾았다. 바지락을 캐러 갈 때가 된 것이다. 결국 동생들에 대한 나의 지속적인 유도 질문에 빠져들고 나서야 호미 찾는 것을 멈추었다.

난 그분이 말한 ‘쑥곳’이 어디인지 개인적으로 궁금했다. 그분 내면 깊숙이 그리움의 흔적이 느껴졌다. 집에 돌아와 인터넷에서 지명을 찾아보기로 했다. 허사였다.

“숙곳? 쑥갓? 쑥고?”

아마도 어린 시절에 불렀던 시골 마을 이름이었을 것이다. 그는 이야기를 하다 말고 나에게 고향이 어딘지 물었고, 다시 자신의 고향을 되풀이했다. 그날 난 반복적인 질문과 답변에 조금씩 지쳐가기 시작했지만 그의 말에 한없이 공감해주는 것으로 만남을 마칠 수 있었다.

요즘은 일반인들과의 소통도 어려운 시대다. 하이터치의 시대에 필요한 건 소통이라고 모두들 강조한다. 하물며 치매환우와의 소통은 참으로 어려운 숙제다. 특히 치매환우 가족들간 소통에서 벌어지는 상실의 상황은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어느 날 문득 아침식사를 끝낸 어머니가 “우리 언제 밥 먹지?”하며 밥을 달라고 보채면, 순간 난감해진다.

그 상황에서 울컥 하는 마음이 들다가 낙심이 된다. 어머니의 어깨를 흔들어 깨워서라도 기억을 제자리로 되돌려 놓으려 애쓴다. 자식은 현실 앞에서 간곡하고 간절하게 호소한다. 그러나 다시 이 세계로 돌아오라고 울부짖어도 소용 없다. 이미 다른 세계 속으로 빠져든 어머니는 우리들의 세계를 찾는 입구를 알지 못한다. 어머니는 어두운 심연 속에 머물며, 눈앞의 자식을 낯선 이방인으로 멀뚱히 바라본다. 치매환우들의 세계에서 우리는 또다른 눈먼 자들의 세계일 뿐이다.

치매 검사에서 확정을 받고도 인정을 하지 않은 1세대 어르신이 있다. 그분은 외형적으로는 비교적 건강하게 보였다. 일상적 행동에도 무리가 없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의 현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아침에 식사를 했는지 기억하지 못하고, 오늘 전화 온 친구의 이름도 누군지 모른다. 망각에 대한 상처는 단지 남겨진 환우 가족의 전유물일 뿐이다. 정작 환우 본인은 망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장기요양강화법 전에는, 치매환우는 요양등급에서 산정이 어려웠다. 하지만 올바른 소통의 중요성은 일상생활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새롭게 개정된 장기요양법에서는 치매 또한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다. 정서적 단절은 일상적 삶에서 더 큰 위협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어떤 이의 내면에 또 하나의 아이가 사는 경우를 본다. 다 큰 어른이 철없는 어린아이처럼 행동한다. 그것은 심리학에서 ‚성인아이‘라고 불린다. 치매환우는 또 다른 세계 속에 존재하는 아이일지 모른다. 치매 가족은 그 아이를 실재한 성인으로 복원시키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 세계 속의 아이는 오히려 그 재촉에 슬그머니 자취를 감춘다. 그렇다면 치매 환우와의 대화는 빈껍데기 뿐일까? 그렇지 않다. 단순히 대화를 나눴을 뿐인데 치매환우의 삶의 질이 개선되었다는 연구결과를 본 적 있다.

매일 10분 정도 환우가 관심 갖는 테마로 지속적으로 대화를 하다보면 환우가 가진 불안감이나 신경정신과적 증상이 호전된다고 한다. 중증일 경우 그 효과는 크다. 치매환우와 소통하는 방법은 무엇보다 일반인에게 대하듯 존중하는 태도다. 치매환우의 내면 심성에서도 상대방이 무시하는 것은 금방 느끼기 때문이다. 또한 인내력을 가지고 대답을 기다려줄 수 있어야 한다. 환우도 상대가 자신을 어떻게 다루는지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화에 있어서는 비언어적 수단을 사용해 온화한 미소로 다가가야 한다. 가벼운 신체접촉도 마음을 여는 방법 중 하나다. 대답이 느리다는 이유로 그들과의 대화를 포기한다면 그들은 그 세계 속에서 더욱 고립되기 때문이다. 실제적 대화는 힘들지 몰라도 인간 내면의 진심은 통하기 마련이다.

이제 파독 1세대의 역사가 저물어가고 있다. 독일에서의 삶은 적응을 위한 피와 땀의 시간이었다. 헐떡이며 달려온 거대한 시간의 파고 속에 이미 망각의 강을 건넌 이들도 보인다. 반 백 년 독일 삶을 기억하지 못하는 1세대들은 어쩌면 이방인으로서 살아가는 우리의 자화상일지 모른다.

사단법인 <해로>가 처음 내건 도움활동의 기치는 치매 환우에 대한 돌봄이었다. 초창기 염원을 기억하며 현재의 길에서 방향에 혼돈하지 않으며, 지속적으로 치매 문제에 고개를 돌려야 할 때다.

박경란/ 사단법인 <해로> Alltagshilfe 자원봉사팀장

후원문의/ 이메일: info@heroberlin.de, 홈페이지: www.heroberlin.de

1186호 12면, 2020년 9월 11일

링크 http://kyoposhinmun.de/serie/2020/09/14/74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