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회 노년과 디지털

1440년, 독일 마인츠에 사는 금 세공업자 구텐베르크는 인쇄기의 발명으로 지식혁명의 방아쇠를 당겼다. 그가 이룩한 인쇄술은 새로운 시대정신의 첫발이었다. 이는 이후 일어난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의 불을 지핀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세상은 한 번쯤 충격적 사건과 함께 문화 패러다움의 변화를 경험한다.

20세기 이후의 키워드는 단연 멀티미디어다. 종이문화의 근간이 된 아날로그에서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디지털로의 변신이 바로 그것. 어쩌면 디지털은 거부할 수 없는 현대사회의 공존모드다. 우리 사회에 디지털의 영토는 점점 확장되고 있다. 이제 편리의 대명사처럼 소통의 안방을 차지한다 올해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이 양상은 더욱 심화되었다. 재택근무는 기본이고, 화상회의로 중요한 사안이 결정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 사회는 미처 발을 맞추지 못하는 계층도 있다. 종종 은행의 자동화기기에서 더듬더듬 지로용지를 들고 송금 등 일처리를 하는 이들을 본다. 이미 은행계에 온라인 송금과 온라인 쇼핑이 대세지만 그 틈새에서 여전히 부적응자처럼 고전적인 방법을 이용한다. 그 계층은 대부분 디지털 소외를 체감한 노년층이다. 그들은 여전히 자신이 해온 습관대로 아날로그식을 선호한다.

근래 들어 디지털 소외를 더욱 극대화한 것은 스마트폰의 보급이다. 노년층에게, 스마트폰은 보유 여부를 떠나 활용 능력의 난제로 다가온다. 이제는 디지털 문맹이라는 말까지 통용된다. 가까스로 카톡과 페이스북을 맛본 노년층은 새로운 어플리케이션의 도입에 따라 또다른 신기술의 세계 속에서 허우적거린다. 그러는 사이 기술은 또 소리 없이 그리고 빠르게 진보한다.

나의 경우, 10년 전만 해도 어린 딸들에게 바비영화를 비디오 테입으로 보여주었다. 하지만 한두 해가 지나 곧바로 CD와 DVD의 보급이 이어졌고, 이제는 그것마저 오래된 퇴물로 전락한 지 오래다. USB의 활용을 넘어 홀로그램의 시대까지 열리고 있다. AI가 소설을 쓰고 영화를 만들고, 인간 영혼의 가장 내면적인 지점까지 디지털 영혼이 장악할 그때가 도래했다.

이러한 복잡다단한 사회에서 노년층이 느끼는 박탈감은 더욱 크다. 코로나로 닫힌 세상이 된 요즘, 상실감까지 가중된다. 대면하기 어려운 세상에서 하루 종일 집에 홀로 있는 노년은 심한 고립감과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특히 치매나 우울증에 걸린 어르신의 경우 그 증상이 더해질 수 있다. 홀로 계시는 어르신을 자주 방문해야겠지만, 코로나 상황에서는 오히려 민폐처럼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이러한 사회적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한 독일정부와 사회의 목소리가 반갑기만 하다. 통계에 의하면, 현재 독일에서는 약 3천 만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사회 구석구석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즉 스포츠, 문화, 종교, 응급시설, 환경 및 요양건강분야 자원봉사자 등이 사회 시스템의 지렛대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 코로나 상황 속에서 독일 연방정부 및 어르신 돕는 단체 등에서는 무엇보다 노년의 디지털화 교육에 팔을 걷어붙였다. 이에 발맞추어 한인 1세대 어르신을 돕는 사단법인 <해로>에서도 디지털 기기 사용에 어려움이 있는 어르신들을 돕는 일에 동참했다. Deutsche Stiftung fuer Engagement und Ehrenamt(참여와 자원봉사를 위한 독일재단/DSEE) 단체의 도움을 받아 노년층의 디지털 교육방법 등을 모색하기로 했다. 참고로, 지원단체인 DSEE는 지난 6월에 설립되어, 전 독일에 걸쳐 적절한 디지털 인프라 구축과 자원봉사단체 및 봉사자들을 돕기 위한 기구다. 사단법인 <해로>는 DSEE의 지원사업과 연계해, 디지털 사용에 관련 도움을 요청한 한인 1세대를 위해 개별적이고 직접적인 디지털 교육을 실시했다.

<해로>에서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한인 B 어르신.

그는 평생 홀로 살아왔지만 올해 불어닥친 코로나 상황에서 더욱 고독감을 호소했다. 그런 그가 최근 인터넷 요가 프로그램에 등록해 활기찬 삶을 이어가고 있다. 해로에서는 그분의 어려움을 청취, 인터넷 Zoom으로 하는 요가 강좌를 활용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기본적인 스마트폰 사용 등을 알기 쉽게 설명했다. 또한 다른 1세대 분들에겐 화상미팅 방법을 소개하고, 소셜 네트워크 활용방법 등을 직접 가르쳐주며 디지털 소통으로의 접근을 유도했다.

디지털 소외가 아닌 디지털 공감노력은 앞으로 노령화 사회 진입의 필수조건이 되고 있다. 빠르게 진화하는 세상에서 여러 세대가 함께 공존하는 방법을 찾는 것도 우리의 숙제다. 그래서인지 무엇보다 이국 땅에서 한인 연대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는 순간이다.

멈추어 서있으면 도태될 것 같은 위기의 세상이다. 속도가 대세인 디지털 사회에서 잘 적응하는 방법이 있을지 모르겠다. 달리는 디지털 기차를 따라잡기에는 두 다리의 힘이 역부족이다. 자꾸만 세월의 나이테 핑계만 대는 걸 보면 마음의 나이도 늙고 있다는 증거일까.

박경란/ 사단법인 <해로> Alltagshilfe 자원봉사팀장

후원문의/ 이메일: info@heroberlin.de

교포신문 1200호 12면, 20년 12월 25일

링크

[19회] 해로(HeRo) 특별 연재 – 노년과 디지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