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회 설맞이 식사 한 그릇을 배달하는 길에서
“어어, 저기는 내가 근무하던 병영인데!”
내 옆에서 영국 신사답게 유려하고도 안전한 운전 솜씨를 자랑하던 숀이 갑자기 흥분된 어조를 감추지 못하였다. 우리는 설날을 맞아 80세가 넘은 한인 어르신에게 배달하는 한식 도시락을 배달 가는 길이었다.
코로나가 강타한 이번 겨울은 록다운 조치로 외출의 기회가 원천 봉쇄되어 버린 탓에 집에만 있게 된 고령자 고위험군은 거의 고립되다시피 사는 처지. 이렇게 맞이한 쓸쓸한 명절에 베를린 주재 한국대사관에서 고령의 파독 근로자 어르신들에게 음식이라도 대접하고 싶다는 의사를 사단법인 <해로>에게 전해왔다. 록다운으로 만나서 먹을 수는 없으니 결국 가가호호 배달해야 한다는 뜻이다.
혼자 사시는 어르신 중에 실제로 따뜻한 밥 한 끼가 소중한 분들이 계심을 잘 알고 있는 해로 팀에서는 좋은 취지에 공조하기로 하고 택배업체로 전격 변신, 도시락을 배달할 명단을 추렸다. 현주소를 파악하고 배달 약속을 확인하러 일일이 전화를 돌리고 베를린에 퍼져 사는 분들에게 배달하는 동선을 짜고 배달 차량을 확보하느라 기존 업무가 중단되다시피 하였다.
기름 값도 안 받고 차량을 제공하고 운전까지 하겠다는 자원봉사자들이 나섰지만 백여 개의 도시락을 단시간 내에 배달하기 위해선 턱없이 부족했다. 환우를 병원에 모시고 갈 때마다 톡톡히 한몫을 해내던 내 차도 하필이면 고장이 나서 울상을 짓고 있던 참에 다행히 대사관이 지원 차량을 내주었다.
코로나 시기에 방문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우리는 어르신들의 안전을 위해 비용이 좀 들더라도 배달에 참여하는 인원들 전원에게 코로나 즉석검사를 시행하기로 하였다. 배달에 나서기 전 코로나 테스트를 요청하는 우리에게
“나는 자주 보드카로 모든 병균을 죽이니 코로나 균도 없을걸. 껄껄”
하고 아재 개그를 날리던 머리가 허연 아저씨는 사실은 분단 시절 영국 병사로 베를린의 영국군 기지에 파송되었다가 통독 후에도 베를린에 남은 이민자였고 한국대사관에서만 20년 이상 근속한 모범운전사였다. 배달차가 베를린 슈판다우로 들어서자 그는 그곳이 예전 영국군이 주둔하던 곳이라며 마치 고향이라도 돌아온 듯이 반가워했다.
“저기 저 빨간 건물 꼭대기 층 왼쪽 창문 보여요? 거기가 바로 내가 쓰던 내무반이었다고요.”
군대 얘기를 평생 한다는 것은 국가와 민족을 초월하여 모든 남성에게 나타나는 공통 현상인가?
“어머나, 그럼 이 동네를 잘 아시겠네요.”
나는 열심히 들어주는 척하며 쓰윽 다음 배달할 주소를 그에게 들이밀었다. 그곳은 지역구청에서 운영하는 노인 전용 소형아파트. 차가 더는 들어가지 않는 골목 끝에서 내려, 보온 상자에서 꺼낸 밥이 식을세라 꼬불꼬불한 눈길 위를 종종걸음으로 뛰어간 내가 벨을 누르자 인터폰에서 아래에 기다리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한참 만에 바퀴 달린 보행 보조기를 끌고 나타나신 어르신은 건물에 단 두 개 있는 엘리베이터 중 하나가 고장이 나서 시간이 걸렸으며 건물 내부가 복잡하여 처음 온 사람은 찾아오기 어려워 아래서 기다리라고 했다며 미안해하신다. 밥이 식어서 송구스럽기만 한 내게 가는 길에 먹으라고 초콜릿 상자를 내어주시는 어르신. 운전하신 분에게 전해주니 한국인들은 참 정이 많다고, 오늘 같은 일로 운전하는 것은 정말 기분이 좋아지는 일이라고 미소를 띠었다.
다음 행선지는 노부부의 집. 초인종을 누르자 할머니가 문을 열며 반겨주셨다. 인사를 드리자 뒤를 돌아보며 할아버지를 부르시며,
“여보, 얼른 이리로 나와 봐요, 해로에서 왔다니까. 앞으로 우리가 더 늙으면 신세를 져야 할 사람들이야, 와서 얼굴을 봐 둬요!”
“아이고 이모님, 저희에게 오실 일 없도록 마지막까지 건강하게 잘 사셔야죠.”
차를 탈 때까지 창문으로 머리를 내고 손을 흔들어주시는 어르신. 며칠간의 수고가 씻은 듯이 사라진다.
마지막 행선지는 한인 밀집 거주지역에서 좀 떨어진 곳. 호스피스 환우는 아니지만 지병이 있으신 분이라 정기적으로 연락을 하며 지내는 분이 사시는 곳이었다. 한 달 전에 뵌 후 전화 통화가 안 되어 어디 가신 건지, 혹시 병원에 입원이라도 하신 건 지 궁금하던 차라 상황을 꼭 보고 가리라고 맘먹고 온 곳이다. 주차를 하고 내리는 나에게 그 동네 아저씨가 다가와서 한국 사람으로 보이는데 C 부인에게 왔냐고 묻길래 그렇다고 하니 3일 전에 병원에서 돌아가셨다는 것이 아닌가!
일전에 뵈었을 때 그렇게 위중하신 상태가 아니었기에 놀라움은 더욱 컸다. 아무리 삶과 죽음은 인간의 힘으로 정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해도 이렇듯 마지막 인사도 제대로 못 나누고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시다니.. 짧게 기도를 드리고 돌아오는 길에 마음이 숙연해졌다.
먼 타향에서 삶을 마감할 우리 한인 어르신들과 조금이라도 더 함께하면 아쉬움이 덜 할까? 해로가 만들어진 후 늘 스스로 던지는 질문이다.
이정미/ 해로 호스피스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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