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회 삶의 친구인 죽음

“나 추워. 내 손 좀 따뜻하게 데워주겠니?”

그림책의 주인공인 ‘오리’가 친구인 ‘죽음’에게 건네는 대사다.

“내가 함께 있을게 (원제 Ente, Tod und Tulpe)” 라는 한국어 제목으로 번역된 독일의 동화 작가 Wolf Erlbruch 의 그림책은 <해로 호스피스 교육>에 사용되는 교재이다. 어린이용 그림책이지만 죽음과 삶이 함께하는 부분을 자연스럽게 묘사한 명작이다.

초로의 나이에 접어든 L 씨는 얼마 전 <해로 자원봉사자>의 문을 두드렸다. 기독교 신앙을 가진 후 봉사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점차 생겨나서 <해로>를 찾아왔다고 참가 동기를 밝혔다. 그분은 일상생활 도우미 봉사 교육을 받으신 후 다시 호스피스 봉사 교육까지 연거푸 받으셨는데 그 사이에 중증 관절염으로 운신이 불편한 S 부인을 도와주러 그 집에 드나들게 되었다.

그 후 S 부인의 남편이 암이 재발한 것을 알게 되었고 운신이 불편한 S 부인을 대신하여 그 남편인 S 씨와 관련된 각종 병원과 약국 심부름을 L 씨가 도맡게 되었다. L 씨의 호스피스 교육 내용이 심화되는 중에 S 씨의 병도 깊어져 갔다. 그리고 L 씨가 호스피스 교육을 수료하고 얼마 되지 않아 S 씨는 결국 돌아가셨다.

겨울이 지나고 밝은 햇살이 비쳐 들어오는 창가에 앉아 L 씨는 면담을 진행하는 내게 말하였다.

“나는 사실 S 부인을 소개받았을 때 처음에는 하나님이 나를 S 부인에게 보내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S 부인이 아니라 그 남편분을 위해 나를 그 집으로 보내신 것이었구나’하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때 받고 있던 호스피스 교육이 내게는 아주 큰 도움이 되었어요.

S 씨가 많이 편찮아지시고 나는 S 씨에게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물었어요. 그리고 그분과 죽음에 관한 얘기를 나누면서, 그분이 정작 누군가와 이런 얘기를 하길 원하신다는 것을 알았어요. 우리가 교육 때 본 죽음에 대한 동화를 그분과 함께 유튜브 영상으로 보았고 그분은 돌아가실 때까지 그 영상을 반복해 보셨지요.”

누구나 기피하고 싶은 ‘죽음’에 관해 과감하게 화두를 꺼내고 이야기를 나눈 L 씨의 용기와 실천력에 박수를 보내었다. 고인이 임종하기 직전에 마음의 평화를 얻으셨다는 얘기를 들으며 또 한 분을 떠나보낸 슬픔 속에서도 호스피스 활동을 하는 보람이 느껴졌다.

돌아가신 S 씨는 주변 사람에게 아량이 잘 베푸는 분이셨는데 내가 고양이를 기르는 것을 알고는 그집의 고양이가 쓰던 캣타워를 내게 주셨다. 당신의 고양이가 너무 늙어서 더 이상 그 위로 뛰어 올라가지 못한다고 했다.

S 씨의 장례식은 코로나로 가족만 모여 조촐히 치러졌다. 그리고 장례식 후 그 집 정원에서 고인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모여 따로 작은 장례식 다과회를 했다. 코로나로 들어갈 수 있는 식당도 없었고 실내에서 만나는 것도 조심스러워 정원에서 모인 것이다.

조문객은 유가족에게 위로의 인사를 전하며 고인을 기억했고 부모를 따라온 꼬마 손님들은 S 씨의 어린 손자들은 마당 한쪽에서 섞여 놀았다. 오랜만에 많은 사람이 모여 북적거리는 것을 본 꼬마들은 마냥 좋은 듯했다. 아마 할아버지도 하늘에서 뛰어노는 손자들을 보며 미소를 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슬픈 장례식 모임이지만 그렇다고 슬프지만은 않은, 아이들의 생명력 넘치는 활기가 녹아있는 따뜻한 위로의 자리였다. 마당 생울타리 아래에는 주인을 먼저 잃은 S 씨의 고양이가 볕을 쬐고 있었다.

그림책 “내가 함께 있을게”에서 ‘오리’는 우연처럼 친구 ‘죽음’을 만난다. 그 후 그 둘은 여기저기 내내 붙어 다닌다.

‘죽음’이 추위를 느끼고 떨고 있을 때 ‘오리’는 곁에 있던 친구답게 자신의 날개로 ‘죽음’을 몸을 감싸 안고 온기를 나누어 준다. 여름이 가고 찬바람이 불어와 오리가 한기를 느끼자 ‘죽음’은 손을 잡고 온기를 나누어 달라는 ‘오리’의 부탁에 기꺼이 꼭 껴안고 위로해준다. 동화 속의 ‘오리’는 ‘죽음’과의 만남이 우연인 줄 알았지만 ‘죽음’은 늘 자신이 ‘오리’의 곁에 머물러 있었다고 알려준다.

죽음은 누구나 회피하고 싶어 하고 평소에는 생각하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죽음은 생명의 탄생처럼 늘 우리 생활 속에 함께 해왔다.

호스피스는 죽음을 우리 삶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이웃의 죽음을 정성껏 배웅하는 일이다. 더 나아가 자신의 죽음도 잘 맞이할 수 있게 준비할 수 있다면 제일 좋을 것이다. 죽음을 잘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어쩌면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유가 아닐까?

이정미/ 해로 호스피스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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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호 16면, 2021년 6월 11일

링크 http://kyoposhinmun.de/serie/2021/06/14/111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