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회 2021 해로 자원봉사자의 날

 사단법인 <해로>의 자원봉사자, B 부인은 지금 에스테틱 과정을 밟으며 피부 미용사의 꿈을 키우고 있다. 수업을 받으러 다니느라 한동안 소식이 뜸했는데 과정이 끝났다며 전화가 왔다. 오랜만에 하는 통화라서 안부 끝에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의외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발 관리 미용사 실기시험을 치르려고 친구에게 모델을 해달라고 부탁하여 시험장에 데려갔거든요. 그런데 시험관이 모델의 발이 너무 곱고 깨끗하다며 모델 부적합 판정을 내렸지 뭐예요. 그래서 시험을 못 봤어요. „

„어머나, 그럼 그동안 배운 게 아까워서 어떡해요?“

„재시험이 있는데 한 달 뒤에요. 그때까지 새 모델을 구해야 해요. 할머니 모델이 가장 적합하다고 해요“

 B 부인은 환자 방문을 성실히 하고 해로의 활동에 늘 관심을 기울여주는 고마운 봉사자다. 이번 기회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어 귀가 쫑긋해졌다.

„할머니요? 우리 해로 문화 교실에 오시는 어르신들 많아요. 모델 하실 분이 있는지 한번 의향을 물어볼게요. 언제죠?“

 자원봉사자와 팀장은 <해로>에서 환자 방문이라는 공적인 업무로 만나는 관계이지만 같이 환자를 방문하며 오랜 기간 여러 사정을 같이 나누는 동안 자연스럽게 친교가 깊어지고 서로의 사정을 들어주는 사이가 된다. 자원봉사자에게 기쁜 일이 생기면 같이 나도 기쁘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같이 염려된다. 봉사자 한 명 한 명이 사단법인 <해로>의 소중한 기둥이다.

 지난 12월 셋째 금요일에 해로 자원봉사자 송년 모임을 했다. 코로나 재확산으로 염려가 많은 시기라서 미리 참가 신청을 하고 2G+ 규정을 지키는 조건으로 모임을 공지했다. 작년에는 록다운 봉쇄로 온라인 모임으로 대체했기 때문이지 공지가 나가기가 무섭게 많은 봉사자가 참가 의사를 밝히며, 동시에 뭘 들고 가면 좋을지를 물었다. 먹거리를 들고 오겠다는 뜻이었다. 가족같이 서로 챙겨주는 마음이 고맙다.

 모임이 시작되기 한 시간 전부터 준비를 도우러 일찍 도착한 봉사자들이 많아 입장을 위한 코로나 즉석 검사를 몰리지 않고 순차적으로 실시할 수 있었다. 코로나 백신 접종을 이미 3차 부스터까지 마친 분들이 대다수였지만 모두 군말 없이 검사에 응했다.

 반가운 얼굴들이 모이자 이야기꽃이 만발했다. 가장 화제의 인물은 불과 일주일 전에 결혼식을 올린 새 신부 성현정 씨. 코로나 시대에 발맞추어 하객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대신 온라인으로 연결하여 전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도록 자신의 결혼식을 라이브로 중계한 신세대이다. 밝고 부지런한 성격으로 방문하는 90세 할머니와 친구처럼 지내며 최고의 신임을 얻어낸 봉사자로 2021년 자원봉사자 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잔심부름을 많이 시키는 까다로운 환자에게 나가서도 불평 한마디 없이 묵묵히 봉사하는 송영아 씨, 벌써 5년째 해로 어르신 기타 교실에서 강사로 봉사 중인 정종미 씨, 해로 행사 때마다 빠지지 않고 참여하여 가장 궂은일을 마다치 않는 김종숙 씨, 할아버지 환우를 친할아버지 대하듯 모시는 유지수 씨. 상품은 쌀 한 포대.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기쁜 선물이다.

 시상이 끝나고 우리는 김밥, 떡볶이, 오뎅으로 이루어진 분식 삼총사로 배를 채웠다. 고향에서야 흔한 길거리 음식이지만 독일 땅에서는 귀한 메뉴이다. 모두 고향의 그리움을 달래며 맛있게 먹었다. 단출한 주메뉴에 각자 들고 온 음식을 풀어 놓으니 상이 넘친다. 모인 사람들은 20대부터 70대까지 나이와 성별을 초월하여 골고루 섞여 있다. 우리는 얼마 전에 돌아가신 80대 자원봉사자 어르신을 기억하며 같이 하지 못한 아쉬움을 달랬다.

 먹은 접시를 치운 우리는 달고나 국자를 부탄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놓고 설탕을 녹이기 시작했다. 21년 전 세계를 강타한 한국의 드라마‚ 오징어 게임 덕분에 붐을 타고 있는 추억의 간식, 달고나를 만들기 위해서다. 나무젓가락으로 저어가며 설탕에 타지 않게 잘 녹인 후 소다 가루를 조금 찍어 넣고 잘 저어 부풀린 후 판판한 철판 위에 쏟아붓고 납작하게 누른 후 다시 모형 틀을 얹어 살짝 찍어 누른다. 한국에서 공수받은 ‚달고나 만들기 도구‘가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다. 소싯적 국민학교 앞에서 코 흘리며 구경했던 달고나 만드는 과정을 떠올리며 너도, 나도 만들기에 도전하였다. 20대 여학생도, 70대 장로님도 어김이 없다. 추억 속에서는 쉬워 보였는데 막상 하려니 이게 만들기가 만만치 않다. 들러붙거나 엉기거나 타버리거나. 만들기는 망해가고 있었지만 우리들은 서로 자기네 동네에서 불리던 명칭이 어떠했는지 얘기하느라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옛이야기를 하며 웃음 짓는 우리들의 오늘을 먼 훗날의 우리는 ‚추억‘이라 부르며 회상할 것이다. 하루하루 성실하게 아름다운 추억을 많이 만들어 두는 것 역시 자원봉사의 기쁨 중 하나이다.

이정미/ 해로 호스피스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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