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회: “고국 땅에 묻히고 싶어요”

새해 한국에서 들려온 뉴스들이 기분을 좋게 한다. 작년에는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서 공식적으로 선진국으로 인정받았고, 또 수출과 무역액이 코로나의 불황 속에서도 사상 최대를 기록하여 세계 8위를 기록했다고 한다. K-pop을 비롯하여 영화와 각종 문화에서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

우리 민족은 대단하다. 전쟁으로 폐허가 되어 다른 나라의 원조를 받던 가장 가난했던 나라가 이제는 다른 나라를 돕는 선진국이 되었다. 위기에도 넘어지지 않는 오뚝이 같은 국민, 남의 것을 받아들이되 독창적인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 내는 창의적인 민족이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잘 사는 나라가 되도록 기초를 쌓은 파독 근로자들의 지대한 공로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한국의 호스피스는 200년의 역사를 가진 유럽의 호스피스에 비해 매우 늦게 시작하였지만, 지금은 어느 나라보다도 뛰어난 발전을 하였다.

한국의 호스피스는 1963년 강원도 강릉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 수녀들이 갈바리의원에서 처음으로 호스피스 간호를 시작하였다. 현대적인 모습의 호스피스는 1988년에 강남성모병원이 호스피스 병동을 처음 운영하였고, 세브란스병원에서 가정간호를 시작하였다.

독립된 호스피스 전용시설을 처음 시작한 샘물호스피스도 1993년에 매우 열악한 환경에서 시작되었다. 이렇듯 한국의 호스피스 역사는 짧지만, 지금은 샘물호스피스와 교회호스피스협회를 비롯한 기독교 단체들을 중심으로 한국적인 호스피스 돌봄을 실천하며, 앞서 시작한 다른 나라보다 뛰어난 호스피스 섬김과 봉사의 지평을 열어가고 있다.

오늘 소개하는 샘물호스피스는 한국에서, 아니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호스피스 기관 중에 하나이다. 샘물호스피스는 100병상을 갖춘 호스피스 전문병원으로, 환자와 가족들이 가정 같은 호스피스 시설에서 매일 같이 예배를 드린다. 죽음을 기다리는 곳이 아니라, 천국으로 이사가려는 기대와 소망을 품고 지내도록 돕는 곳이다.

샘물 호스피스 전경

한국의 다른 병원과 달리, 지중해 풍의 아름다운 건물에, 모든 병실이 집과 같은 온돌방으로 되어 있고 창문으로 따스한 햇볕이 들어오며 보호자도 같은 방에서 함께 지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식사도 일반 병원식과는 달리 가정집의 집밥같이 맛과 질이 매우 좋다. 원래는 무료병원이었는데, 지금은 법적으로 무료병원을 운영할 수 없어서 최소 비용을 받지만, 그것조차 부담할 수 없는 분들에게는 샘물호스피스선교회에서 비용을 부담하기도 한다.

또 샘물호스피스는 2019년부터 자연장지(自然葬地)를 운영하고 있다. 사람이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는 성경적 원리(창 3:19)에 따라 병원 뒷산을 자연 친화적인 장지로 만들었다. 환자들이 살아계실 때는 사랑으로 섬기고, 임종 후에는 흙으로 돌아가는 과정까지 도움으로써, 사랑하는 가족을 먼저 떠나보낸 남은 가족들이 천국 소망으로 슬픔을 이기고 힘을 내어 살아가도록 돕는 것이다.

파독의 역사가 내년이면 60주년을 맞는다. 파독 근로자 어르신들의 연세가 80세 전후의 나이가 되다 보니, 몸이 아프신 분들도 많고, 돌아가시는 분들에 대한 안타까운 소식도 자주 듣게 된다.

A 이모님은 파독 간호사로 오셔서 50년을 독일에서 사셨고 암 수술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질병을 가지고 사신다. A 이모님은 독일에서 오래 살았고 가족들도 독일에 살고 있어 한국에 가서 정착하여 살기는 어렵지만, 언젠가 죽게 되면 반드시 조국 대한민국의 땅에 묻히고 싶은 강한 소망을 가지고 계신다.

많은 분들이 그와 같은 바람을 가지고 계시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기가 힘든 까닭에 아예 포기하고 사시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런 소원을 가지고 계신 분들에게 희망적인 소식이 있다. 파독 근로자들의 경우 샘물호스피스의 자연장지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샘물호스피스는 파독 근로자들을 섬기는데 매우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파독 근로자들을 섬기는 호스피스 선교사로 필자를 파송하였고, 특별히 파독 근로자 중에서 호스피스 돌봄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고 한국에서 호스피스 병원에 입원하기를 원하는 분이 있을 경우에는, <해로> 호스피스를 통해 도움을 요청하면 샘물호스피스에서 입원과 장례, 안장까지 도와주기로 하였다.

우리나라가 오늘날과 같이 발전하는 데는 파독 근로자들의 희생과 헌신이 크게 기여한 것을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분들에 대한 정부 차원에서의 지원은 미미하여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하는 형편이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파독 근로자들의 은혜를 잊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샘물호스피스를 비롯한 한국의 교회들이 뜻을 모아 작은 섬김부터 실천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 첫 번째 일로 파독 근로자를 섬기는 선교사를 파송하여 찾아가는 예배와 기도를 통해 위로와 지지를 해드리고,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환자들의 병원 동행에서부터 실제적으로 필요한 도움을 드리려 하고 있다. 지금은 베를린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앞으로 지역 교회나 봉사단체들과 연합하여 섬김의 지경을 더 넓혀가기를 바라고 있다.

호스피스나 그밖의 질병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도움이 필요한 분들은 <해로> 호스피스의 문을 두드려 도움을 받으시기를 적극 권한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마태 7:7)

– 박희명 선교사 (호스피스 Seelsor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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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0호 16면, 2022년 1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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