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회 “이모라고 불러주세요!”

나이 많으신 파독 1세대 여자 어르신들은 “이모님”이라고 불리는 것을 좋아하신다. 손주뻘 되는 젊은이들에게도 “할머니”보다는 “이모”로 불러 달라고 하신다. 특히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의 경우에는 가족과 같은 끈끈한 유대관계가 그립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A 이모님은 사별하고 오랫동안 우울증으로 고생하기도 했고, 크고 작은 질병으로 병원 신세도 많이 지신 분이다. 동포사회와 떨어져 지내시다가 작년부터 해로를 통해 도움을 받으시면서 모임에도 나오기 시작하셨다. 요즘은 혼자 조용히 사실 때는 몰랐던 기쁨과 행복을 느끼며 날마다 “감사!”를 외치며 사신다. 새롭게 조카들도 생겨서 좋고, 다시 언니와 동생들을 많이 만나니 생활에 활력이 넘치신다고 하신다. 해로의 봉사자들이 어르신들을 방문하여 도와드리면서 새롭게 형성된 관계는 단순히 봉사자로서의 관계를 넘어 가족과 같은 관계가 되기도 한다.

하나님은 첫 사람 아담이 혼자 사는 것을 보시고 “좋지 못하다”라고 하셨다. 그래서 하와를 만들어 주셨고 “참 좋다”고 하셨다. 사람이 함께 사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좋은 일이고 우리에게도 가장 좋은 일이다. 사람이 공동체를 이뤄 함께 사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다. 그런데 현대 사회의 특징 중의 하나는 공동체가 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공동체는 계속 깨지고 실패하지만, 사람들은 여러 가지 공통분모를 찾아서 다양한 모습의 공동체를 계속 만들고 있다. 그만큼 사람들에게는 공동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만든 공동체가 오래 지속되거나 계속해서 좋은 영향력을 미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심지어 하나님께서 친히 만드신 가족과 교회라는 공동체까지도, 완전하지 않은 사람들 때문에, 가족과 같은 사람들에게 실망을 주고 상처와 고통까지 주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현대 사회가 가지고 있는 많은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좋은 공동체만이 유일한 해답이다.

좋은 공동체는 구성원들끼리의 유대가 끈끈하다. 그 유대를 끈끈하게 하는 원동력은 사랑과 섬김이다. 이런 끈끈함을 가진 대표적인 공동체는 “가족”이라는 공동체이다. 사람의 눈으로는 하나님을 볼 수 없기에,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어머니를 주셨다는 말이 있다. 가족의 중심에 어머니의 사랑과 헌신적인 섬김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파독 간호사로 오신 많은 “이모님”들은 여전사와 같이 이역만리 독일에서 인종차별과 편견에도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오신 분들이다. 외국에서 힘든 일을 하면서 어렵게 번 월급의 대부분을 고국에 보내서 나라의 경제를 일으키던 근대화의 영웅(Hero)이었고, 5~60년 전이나 지금이나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은 조금도 변함이 없다.

한때는 “동양에서 온 천사”라고 불리며 간호사로 독일의 병원들을 주름잡던 때가 있었지만, 이제는 모두 나이가 들어서 세월의 무게를 견디며 얻은 크고 작은 질병으로 힘겹게 살아가고 계시는 분이 있는가 하면, 어떤 분들은 오랫동안 침상에만 계시면서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병실에서 외로운 시간을 보내는 분들도 있고, 사별하고 혼자 사시기에 돌볼 가족이 없는 이모님들도 있어서 안타깝기만 하다.

B 이모님을 요양원으로 방문하였는데 방문을 마치고 나올 때까지 저희들의 얼굴만 뚫어져라 하고 계속 바라보셨다. 치매로 말씀을 전혀 못 하시지만 소리에는 반응하실 것 같아, 손을 잡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보았지만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으셨다. 예전에 교회에 다니셨다고 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변함없이 사랑하신다는 것을 말씀드렸다. 그리고 어렸을 때 주일학교에서 많이 불렀던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예수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요한복음 3장 16절”하고 찬양을 불러드렸다. 이 찬양을 부르니까 잡았던 저의 손에 힘을 주며 손으로 박자를 맞추듯 계속 반응을 보이셨다. 계속해서 여러 곡의 찬송가를 불러드렸는데 손으로 반응을 보이는 곡은 아마도 귀에 익은 찬송가인 듯하였다. 찬양 소리에 반응하는 것이 너무 감사했다. 치매로 한국말을 사용하지 못하는 요양원에 있다 보니 나중에 배운 독일말은 물론 한국말조차도 다 잊어버리신 듯하다. 말과 음식이 맞지 않는 독일의 병원과 요양원에서 외롭게 투병하는 파독 근로자 어르신들을 위한 관심과 기도가 많이 필요하다.

독일에 와서 알게 된 사실은, 우리 동포들 중에 꽤 여러분이 파독 어르신들이 연세가 들어가면서 몸과 마음이 약해지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한인 동포들을 사랑으로 섬기는 한인요양원과 같은 공동체를 만들려는 시도를 여러 차례 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런 훌륭한 생각들이 당시에는 너무 빠른 시도였을지 모른다. 어쩌면 바로 지금이 파독근로자 어르신들을 사랑으로 섬기는 공동체가 필요한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모님들은 하나같이 독일 요양원에 들어가기를 원치 않는다고 말씀하신다. 말과 음식과 모든 것이 불편한 독일 요양원의 어려움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이다.

해로에서는 우리 어르신들이 함께 만나서 식사도 하고 친교도 나누는 가족과 같은 공동체를 꿈꾸며 “쉼터”를 만들려고 기도하고 있다. 이곳에서 친밀해진 어르신들이 훗날 한 집에서 함께 사는 꿈도 꾸어 본다. 이곳이 한인 동포들을 위한 섬김의 집이 되어, 그곳에서 행복하게 지내시다가 평안하게 천국으로 이사 가시는 날이 오기를 기도한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시편 133:1)

박희명 선교사 (호스피스 Seelsor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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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2호 16면, 2022년 1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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