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회 왜 자원봉사를 하는가?

2015년에 시작된 HeRo(해로)는 ‘우리는 어디서 어떻게 늙어가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코멘트에서 출발했다. 해답은 늘 사람이었다. 그야말로 이국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도움활동의 필요성으로 귀결되었다. <해로>의 입술로 연재를 시작하지만,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재독 동포들의 목소리를 그릇에 담으려 한다. 이 글이 고단한 삶의 여정을 걷는 이들에게 도움의 입구가 되길 바란다(필자 주)

유치환의 詩 <행복>에는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느니라”는 구절이 있다. 난 詩에서처럼 에메랄드 빛이 아닌, 집 근처 허름한 우체국에서 이 구절을 함께 적어 편지를 보냈던 기억이 있다. 이 단순한 싯귀는 비단 남녀간의 사랑을 넘어 인간관계나 나눔에 있어서도 활용된다. 사랑이든 뭐든 남에게 무언가 준다는 행위는 자발적인 내재동기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자신 스스로의 행위에 대한 만족감 때문에 행복한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주는 것은 이기심의 변형된 모습인지 모른다.

자,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행위를 생각해보자. 받을 때보다 확실히 즐겁다. 다시 돌아올 대가가 없어도 자기 만족이 바로 보상이다. 행위 전에 타인이나 집단으로부터 보상이라는 인센티브가 제시되었을 때는 오히려 만족도가 하락한다. 이는 이타적인 행동을 더럽힐 뿐만 아니라 선행을 베푼다는 내재적 욕구를 저버리기 때문이다.

수많은 행동심리학자들은 인간 내면에 존재한 동기부여를 연구해왔다.

한때 영국에는, 여름마다 승객을 태운 사두마차를 매일 2-30마일 가량 모는 부유한 신사들이 있었다. 이 특권을 행사하려면 상당한 돈이 들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이 보수를 받는다면 그것은 일로 바뀔 것이며 신사들은 더 이상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의미있고 흥미진진했던 일이, 막상 보상이 주어지면 오히려 지루한 업무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러한 동기부여는, 상황은 다르지만 봉사활동 등 선행에 있어서도 적용 가능하다. 따뜻한 마음으로 시작된 자발적 봉사가 막상 보상이 주어지기 시작하면 일로 전락할 확률이 높다는 얘기다. 또한 보상이 주어진 봉사는 초기에는 활동성에 탄력을 받을지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누군가를 돕고 있다는 동기부여가 ‚일‘이라는 감정 속에서 충돌을 일으킨다. 이와 반대로 칭찬이나 사명감 고취 등 무형의 보상이라도 주어지지 않는다면 이것 또한 지속성을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 ‚오른 손이 한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말씀이 지켜지기 어려운 이유다. 그러기에 봉사자를 독려하고 지속적으로 봉사활동 참여를 유도하기가 쉽지 않다.

독일에는 약 3100 만 명 이상이 여가시간에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2011년엔 연방자원봉사제를 도입해 최근까지도 4만 3천 여 명 이상이 연방자원봉사제에 참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독일이 두 번의 전쟁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재건될 수 있었던 원동력의 8할은 이러한 자원봉사 때문이었다.

독일의 봉사활동의 기저에는 기독교 사상이 있다. 중세 독일에는 교회 헌금함 외에 별도로 나무궤짝을 만들어 그곳에 채소나 곡식 등을 익명으로 넣게 하고 필요한 사람에게 나눌 수 있도록 했다. 나눔의 출발인 셈이다. 루터는 이것을 하나님 안에서 소명의식이라 표현하며 이 행위는 하늘의 상급을 받을 수 있다고 설파했다. 즉 현실세계의 보상은 없어도 사후세계의 대가 지불이기에 ‚소명‘이라는 무형적 보상이 동기부여가 되었다. 대체로 순수 자원봉사를 실천하는 이들의 동기를 들여다보면 종교적 바탕이 주류다. 그래서 실제로 남을 돕는 이들 중에 기독교인이 많은 이유다.

근래 우리나라의 경우 학생들의 자원봉사 활동은 직업이나 스펙을 위한 활동으로 전락했다. 이는 봉사활동 점수라는 현실적인 보상을 제공하더라도 청소년들의 봉사를 권장하자는 사회적 합의도 포함되어 있다. 개인주의가 발달하면서 점점 남을 돕는 자발적 봉사가 사라져가기에 궁여지책으로 이런 방법을 통해서라도 사회적 분위기를 유도하자는 적극적 제스쳐다. 게다가 비록 100% 순수하고 자발적이진 않더라도, 봉사활동 과정을 통해 자신 및 타인을 위한 통찰 등 교육학적 기대감도 작용한다.

사단법인 <해로>는 전적인 자원봉사자들의 활동을 통해 환우들을 돌아본다. 호스피스 및 일상생활 자원봉사 교육은 참여자들을 발굴하는 통로다. 일상생활 자원봉사자 교육을 예로 들면, 다양한 사회적 그룹과 연령대로 구성되어 있다. 10대부터 60대까지 전 세대가 함께 한다. 그들은 다양한 동기를 가지고 자원봉사 교육에 참여한다. 순수 자원봉사의 마음을 지닌 이, 이곳에서 어떤 삶의 출구를 찾고자 오는 이, 소셜 커뮤니티의 통로, 배움의 의지 등 동기는 여러 가지다. 그들의 다양성은 수업에 활기를 가져다준다. 물론 교육을 마친 후 막상 봉사현장을 나가는 숫자는 기대에 미치진 못한다. 또한 지속성을 유지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한 명의 든든한 자원봉사자라도 발굴한다면 그것은 단체로서는 큰 자산이고 귀중한 열매다.

무엇보다 교육 자체에서 기대하는 것은 나와 타인의 관계에 대한 이해, 그리고 조금이나마 남을 돕는 일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유도하고자 함에 있다. 그러기에 교육은 먼저 자기를 찾는 과정부터 시작한다. 성인이 된 이후 미처 발견하지 못한 인성의 밑둥부터 더듬어간다.

우리 교육팀은 교육 안에서 봉사의 내적동기를 지속시킬 수 있는 방안들을 고민했다. 그것은 자원봉사,라는 개념이 시대에 따라 변화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어려운 이웃을 섬기고 돕는 행위로 그쳤다면, 오늘날에는 돌봄을 넘어 이웃과의 연대의 정신을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활동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를 통해 나를 알아가고 삶의 의미를 깨닫는 데에 진정한 동기부여를 찾는 것이다.

순수하게 남을 돕는 봉사의 동기가 아니어도 좋다. 일단 <해로>라는 그릇 안에서 해로와 연대성을 가지며, 활동을 통해 동기부여를 함께 성장시켜 나간다는 기대감이 시작이다.

박경란/ 사단법인 <해로> 일반 자원봉사팀장(후원문의:info@heroberlin.de)

교포신문 2020년 5월 8일, 1170호 12면

링크:

[5회] 해로(HeRo) 특별 연재 – 왜 자원봉사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