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회 “더 낮은 곳을 향하여”
호스피스나 말기 환자를 돌보는 일은 쉽지 않기에 혼자서 감당하기 어렵다. 그래서 호스피스 환자나 말기 환자를 돌보는 일은 많은 강물이 바다를 향하여 가는 것에 비유한다. 그 강물의 이름은 말기 환자와 그 가족, 의사와 간호사, 봉사자와 사회복지사, 성직자 그리고 환자와 함께 하는 모든 사람이다. 넓은 그 바다는 수많은 강줄기가 흘러 들어가서 바다를 이루듯, 한 사람의 환자를 위해 많은 이들이 협력하여 돌보게 된다. 이 많은 물줄기가 환자가 있는 낮은 곳을 향해 흘러가며 함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간다.
죽음으로 가는 길, 그것은 모두에게 미지의 세계이기에 때로는 두려운 것이다. 하지만 마라톤의 골인 지점을 향해 달리는 것과 같은 힘든 상황에서, 사랑하는 이들의 지지와 격려를 받으며 인내의 강물을 따라 함께 흘러내려 가노라면 자신도 모르게 미지의 바다에 도달하게 된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두려움의 바다는 사랑의 바다로 변하게 되는 것을 곧 알게 되며,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난 자신을 바라보고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부활의 몸을 입는다고 한 성경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기쁜 순간이다.
만약 부활이 없다면 봉사와 사랑을 실천하며 나의 것을 나누며 산 사람들은 자기를 위해 살지 못했기에 가장 불쌍한 인생을 산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러나 죽음이 끝이 아니라 죽음 너머에는 아름다운 부활의 삶이 있기에, 어려운 이들을 돕고 사랑하며 산 이들의 삶은 세상에서는 미련해 보일지 몰라도 하늘에서는 가장 수지맞는 삶을 산 사람이 된다.
특별히 환자들을 섬기는 자원봉사자들의 삶은 그야말로 이 세상에서는 이타주의적인 삶을 살았지만, 하늘에서 결산해 보면 가장 상을 많이 받게 되어 고상한 이기주의적 삶을 산 사람들이 될 것이다.
말기 환자들 거의 대부분의 환자들은 병에서 낫게 해주시면 반드시 봉사하며 사랑하는 삶을 살겠다고 말한다. 죽음 앞에서 돌아보니 하나님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자신만을 위해 바쁘게 살아온 삶이 덧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치료가 불가능한 때가 되어서야 알았다는 것이 너무 안타까울 뿐이다.
이들이 그토록 원하는 봉사하는 삶을 미리부터 살았다면, 오히려 지금과 같은 병도 없이 건강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건강하고 힘이 있을 때 자신만을 위해 살지 않고, 이웃을 돌아보며 그늘진 곳에 있는 이들을 위해 봉사하며 섬기는 삶을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새삼 깨닫는다.
모든 봉사자가 한 목소리로 하는 말이 있는데, 자원봉사로 남을 도우면서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준다고 생각했는데, 봉사하면 할수록 오히려 자신들이 더욱 큰 은혜를 받고 있다고 고백한다. 이들은 봉사할 수 있는 삶을 살도록 건강을 주신 것에 감사하고, 또 연약한 이들을 섬길 때 얻는 큰 기쁨과 보람이 너무 커서 정말 행복하다고 한다.
K 권사님은 암 투병을 하면서 큰 수술을 하였다. 자신이 아파보니까 아픈 사람의 마음을 알게 되었고, 죽음 앞에 서 보니까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도 힘들지만 남을 도우며 사는 자원봉사자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매주 시간을 정해서 호스피스 시설을 방문하여 환자들의 몸을 씻겨드리는 목욕 봉사를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환자들과 친해지고 섬김도 수월해져서 봉사가 너무 즐겁다고 하신다. 자신이 아프지 않았으면 알지 못했을 봉사하는 삶을 큰 고난 중에 깨닫게 하셔서 너무 감사하며 사신다.
이렇듯 대부분의 봉사자들과 후원자들은 자신이 건강하고 여유가 있어서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바쁘고 힘들어도 나누는 기쁨이 자신을 위해서 안락함을 누리는 기쁨보다 크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봉사를 쉬지 않는다. 자원봉사자 교육은 자신의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 봉사자가 되도록 가르친다. 부모가 모범적인 봉사를 하는 가정의 자녀들은 부모를 보고 배워서 자신의 학업도 성실히 하고, 친구들과 관계에서도 섬기면서 리더가 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봉사는 자신뿐만 아니라 자녀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주어서 자녀들이 잘되는 복도 받는 것을 많이 본다.
예수님은 자신이 이 땅에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마가 10:45)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모두 섬김을 받기를 좋아하고 남들보다 더 높아지려고 한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서로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다투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게 되고 싶은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으뜸이 되고 싶은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마가 10:43~44)라고 가르치셨다. 예수님께서 친히 많은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면서 섬김의 리더십을 보여주셨다.
봉사는 약한 사람을 돕는 일이다. 진정한 섬김은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을 섬길 때 더욱 빛을 발한다. 예수님은 가르침은 우리에게 더 낮은 곳을 향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세상과 교회는 더 높은 곳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어서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
기독교는 십자가의 종교이다. 십자가가 없이는 영광도 없다. 우리들의 삶도 복을 받는 삶이 되기 위해서는 복 받을 일을 해야 한다. 병상에서 더 많이 봉사할 걸 하며 후회하지 말고, 지금부터 낮고 어두운 데서 사는 이웃들을 돌아보며 고상한 이기주의의 삶을 살아가길 소망한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을 돌보는 사람은 복이 있다.
재난이 닥칠 때에 주님께서 그를 구해 주신다.” (시편 41:1)
박희명 선교사 (호스피스 Seelsorger)
1274호 16면, 2022년 7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