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회 그때 그 시절 나의 전성시대 사진첩

‘자존감’과 ‘자존심’은 글자 하나 차이지만 아주 큰 차이가 있다. 자존감과 자존심은 서로 반대의 심리상태로 나타난다. 자존감이 자기 자신 스스로 존중하는 마음이라면, 자존심은 남들에게 존중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스스로 존중하는 자존감은 내가 주체가 되어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마음이지만, 존중받고 싶어 하는 자존심은 누군가가 나를 인정해줘야만 채워질 수 있고, 욕심과 같아서 원하는 만큼 채우기가 어렵다.

자존감이 높으면, 스스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충분히 인정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평가에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남의 말에 자존심이 상할 일도 없다. 반면에 자존감이 낮으면, 스스로 자기 자신을 존중하지 않으니까 다른 사람의 칭찬과 인정을 통해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받으려 하는 자존심이 강한 형태로 나타나는데, 다른 사람의 자기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게 된다.

우리는 스스로의 마음을 냉정히 평가하여 자존감이 높은 사람인지 자존심이 강한 사람인지를 살펴야 한다. 그래야 대인관계도 좋아지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자존감 높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남의 의견에 수동적으로 따라 살기보다는, 주변의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작은 것부터 스스로 선택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처음에는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시행착오도 있겠지만,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결정이 아니라 자기의 능력에 맞춰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자존감을 키워갈 수 있다.

L 이모님은 자존감이 매우 강하시다.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알아서 소신껏 하신다. 지난 1월 신년 예배 때에는 아주 화려한 빨강색 한복을 입고 오셨다. 이 한복은 50여 년 전에 독일에 오셨을 때 입으시던 것이었다. 지금으로서는 보기 힘든 화려한 색상과 오래된 디자인의 한복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새해 첫날이니까 한국 사람으로서 입을 수 있는 고유한 의상으로 입고 싶으셨다고 한다. 단연코 눈에 띄는 복장이어서 함께 사진을 찍기도 하였다.

독일에 오신 때나 지금이나 몸매가 변하지 않아 그때 그 시절의 한복을 입을 수 있고, 그때는 아주 비싸게 맞춰 입고 오셨을 한복을 장롱 속에 고이 보관하고 계신 것이 너무도 놀라웠다. 남들에게 불편함을 주는 일이 아니라면, L 이모님처럼 지혜롭게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당당하게 사는 것이 너무 보기 좋았고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남의 눈치 보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고 사는 것은 어르신들의 정신 건강에도 매우 좋다. 그러나 한국인의 기질상 남의 눈을 많이 의식하고 사는 분들이 많다.

어르신들, 특히 여자분들은 사진찍기를 싫어하시는 경향이 있다. 나이 들어가면서 젊을 때와는 다른 모습을 남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그럴 것이다. 오래전 젊은 시절의 파릇한 때를 나의 전성시대라고 생각하시기에 지금은 늘고 추하다고 생각하신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앞으로 살아갈 날 중에 오늘이 가장 싱싱하고 아름답고 멋진 때이다. 4월에 계획 중인 영정사진 촬영에도 부끄러워하지 말고 많이 참여하길 바라고 있다.

곱고 멋지게 늙어가는 것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다. 그런 모습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몸과 마음을 단장해야 한다. 마음이 활기차고 즐거우면 몸도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이것을 위해 자신을 위한 투자도 때론 필요하다. 적은 돈을 저축하여 생일에는 나에게 선물도 하고, 맛있는 식사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다가오는 봄에는 예쁜 옷을 골라 입고 친구들과 나들이와 여행을 떠나도 좋겠다. 이런 것이 지혜가 아닌가!

지혜는 생명나무와 같아서 “지혜가 시키는 대로 살면 수명이 길어진다”(잠언 9:11)라고 하였다. 어제의 전성시대를 그리워하지 말고, 오늘을 나의 전성시대로 만드는 지혜를 가져보자.

올해는 한독수교 140주년과 파독 6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를 맞아 다양한 행사가 준비되고 있다. 해로에서도 두 번의 “세대공감 파독 사진 공모전”을 했던 경험과 자료를 모아 특별한 사진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전시회가 우리만의 전시회였지만, 이번에는 Charlottenburg Rathaus에서 한 달 동안 한국인들이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 오늘날과 같은 선진국이 되었는지 독일 사회에 알리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60년 전에 파독 광부를 시작으로 간호 인력들이 독일에 와서 땀과 눈물로 외화를 벌어서 고국에 보낸 것이 마중물이 되어 우리나라 경제발전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

석탄을 뒤집어쓴 모습의 사진도, 어색하고 촌스럽게 느껴지는 오래된 사진도 이제는 전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나라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한 자랑스런 모습이며 널리 알려야 할 모습들이다. 빛바랜 작은 사진이 앨범에 있을 때는 개인의 추억이지만, 꺼내 놓으면 그것이 곧 파독 근로자들이 몸으로 쓴 대한민국의 역사가 된다.

아직도 많은 분들의 옷장과 앨범 속에는 파독 60년의 세월 동안의 많은 기록과 사진들이 있을 것이다. 나라를 우뚝 세우고 인간승리를 이뤄낸 파독근로자들의 삶과 노고를 다음 세대에게 보여주고 전수해야 역사가 기억할 것이다.

장롱 속에 갇혀 있다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고 버려지는 역사가 되지 않도록 “세대공감 파독 사진 공모전”을 통해 모든 세대가 함께 공감하는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만들어 가기를 바란다. 파독 가족들의 많은 참여를 기다린다.

“백발은 빛나는 면류관, 착하게 살아야 그것을 얻는다.”(잠언 16:31)

박희명 선교사 (호스피스 Seelsorger)

1304호 16면, 2023년 2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