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회 길을 만드는 사람들

“원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지만, 걸어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된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아Q정전’을 쓴 중국의 작가이자 사상가인 루쉰(魯迅)의 명언이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며 사용하고 있는 많은 문명의 기기들도 원래부터 있던 것이 아니다. 누군가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만든 것들이다. 팔에 날개를 붙여서 날아보려고 했던 사람들의 무모한 도전이 오늘날과 같은 비행기를 만들어냈다. 인생의 모든 일들은 누군가 모험적으로 처음 시도하였고, 그 결과 오늘날 우리가 그 혜택을 보고 있는 것들이다.

오늘날 말기 암과 같은 질병을 앓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호스피스는 일반화된 의료 서비스가 되었다. 사망자통계를 보면, 4명 중 1명은 암으로 죽는다고 한다.

호스피스는 오래전 기독교 봉사단체에서 임종 환자를 돌보던 봉사가 그 기원이지만, 현대적 의미의 호스피스는 여의사 시실리 손더스(Cicely Saunders)가 임종을 앞둔 환자들의 통증관리와 임종을 끝까지 돌보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여 1967년에 성 크리스토퍼 호스피스(St. Christopher Hospice)를 설립하였고, 이런 독자적인 호스피스 프로그램을 용기 있게 처음 시작한 덕분에 오늘날과 같은 전문화된 호스피스 의료제도의 혜택을 입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호스피스 전문병원인 샘물호스피스가 지난달에 창립 30주년을 맞이했다. 샘물호스피스는 매우 열악한 환경과 조건에서 봉사를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건물도 없이 농가 주택을 빌려서 임종 환자들을 무료로 돌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말기 암 환자들을 위한 호스피스 시설을 건립하려는 시도는 지역주민들의 반대로 여러 차례 쫓겨났고, 결국 외딴 장소인 지금의 자리에 조그마한 집을 건축하여 시작할 수 있었다.

제3회 세대공감 사진전

부족한 재정과 사회적인 냉담으로 처음에는 매우 힘들게 운영되었지만, 지금은 100병상의 호스피스 전문 병원으로 성장하였고, 입원하려는 환자가 줄을 잇고 있다. 병원, 집, 교회의 기능을 함께 감당하면서 환자와 가족들의 몸과 마음을 가장 편하게 돌보고 있어 만족도가 매우 높기 때문이다. 많은 호스피스 봉사자와 단체들이 샘물호스피스와 같은 봉사를 배우려고 벤치마킹하고 있다.

처음에는 후원금에 의존하는 무료 봉사여서 지속가능성을 보장할 수 없었고, 앞이 보이지 않는 길을 가는 것과 같았다. 그러나 오랫동안 한결같은 모습으로 섬김을 길을 계속 걸어왔기에, 지금은 많은 사람이 가고 싶어 하는 좋은 길이 되었다.

그동안 한인 동포들을 위한 요양원을 세우려는 시도들이 많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때는 좋은 의도와는 달리 입원환자가 많지 않은 때여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와 달리 우리 1세대 파독 근로자 어른들이 그때보다 훨씬 노령화되었고 몸도 예전 같지 않게 환자들도 많이 생겨나고 있다.

해로에서는 이분들을 어떻게든 도우려고 다양한 방법을 찾고 있다. 현재 여러 단체가 함께 사용하고 있는 좁은 공간에서 더 넓고 교통과 사용이 편리한 독립 공간으로 이주하여 주간 보호와 쉼터를 시작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새로운 길을 찾고 있다. 또한 혼자 생활하시기 어려운 어르신들이 함께 식사와 생활을 하면서 공동체 생활을 할 수 있는 시니어 그룹홈 장소도 찾고 있다. 아직은 우리가 가야 할 길이 보이지 않지만, 한 발씩 내딛다 보면 길이 보일 것이라 믿는다.

해로는 계속해서 길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지난 6월 5일에는 베를린의 유서깊은 관청인 Rathaus Charlottenburg-Wilmersdorf에서 제3회 “세대공감 파독 사진전” 개막식이 있었다.

개막식은 다음 세대인 조은영 변호사의 사회로 진행되었으며, 파독 1세대 시절부터 연주자로 활동하신 양유나 님과 다음 세대 정지윤 양의 첼로 듀엣 연주로 모든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개막식을 시작하였다. 봉지은 대표의 환영사와 함께 베를린 거주하며 동포들을 위해 다양한 봉사를 하고 계신 김희정 전 여가부 장관과 Detlef Wagner 부구청장이 참석하여 축사해 주시며, 파독 60주년과 한독 수교 140주년을 맞아 개막되는 사진전의 의미를 더욱 빛나게 해주셨다.

또한 개막식이 무르익어 갈 무렵, 소프라노 정한별 양이 독일 가곡 “보리수”를 아름다운 목소리로 독창하여 한독 행사의 의미를 더해 주었고, 마지막으로 해로 합창단이 김은용 목사님의 지휘로 “내 마음에 강물”을 아름다운 목소리로 합창하였다.

이어서 “홀로 아리랑”을 부를 때에 모든 참석자가 구청이 떠나갈 정도로 흥겹게 합창하였다. 흥에 겨운 참석자들은 아리랑 춤을 함께 추기도 하였고, 우리가 동포인 것을 확인하여주는 마음 찡한 시간이 되었다.

이 행사를 힘을 모아 준비한 해로의 봉사자들은 모두 다음 세대들이다. 우리는 우리 파독근로자 어른들의 삶이 우리 동포들과 국민들에게 계속 기억되기를 바라고 있다. 우리의 손으로 전시회를 하면서 다음 세대들과 함께 파독의 역사를 잊지 않고 공유하고 보전하려고 한다.

우리가 가고 있는 지금은 큰 길이 아니라고 해도, 계속 걷다 보면 우리가 함께 걷고 있는 여기가 바로 길이 되리라 믿는다. 우리는 힘들어도 좋은 길을 만든다는 마음으로 이 일을 하고 있다. 뜻을 같이하시는 분들의 관심과 격려가 모여 새로운 길을 만들게 될 것으로 믿는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태복음 7:13~14)

박희명 선교사 (호스피스 Seelsorger)

1318호 16면, 2023년 6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