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회 인터넷을 배우는 할머니
“그치도 요즘 기계를 좀 볼 줄 알우?”
관절염과 골다공증이 심해 온몸이 아프시다는 H 할머니를 방문해 요양 상담을 하고 있는 중에 어르신은 조심스레 다른 이야기를 내게 꺼내신다.
“요즘 젊은 아이들만큼은 잘하지 못해요. 그래도 제가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컴퓨터에 앉아 일을 해야 하니 조금은 해요. 무슨 문제가 있으세요? 아는 만큼 도와드릴게요.”
H 할머니는 화색이 밝아지며 저쪽에서 포장 상자를 들고 오시더니 부스럭부스럭 새 태블릿은 꺼내 놓으셨다.
“친구들을 보니까 이걸로 한국 드라마도 보고 뉴스도 보길래 나도 하나를 샀는데 아무리 틀어도 한국 드라마가 안 나와. 그래서 산 곳에 들고 가서 드라마가 왜 안 나오냐고 물었는데 XX콤으로 가라 하고 도통 뭐라는 건지 모르겠어. 코로나 때문에 모임도 없고 어디 물어볼 대가 있어야지… 온 김에 좀 도와주고 갈라우?”
“그걸 보려면 인터넷이 필요한데 집에 인터넷이 있나요?”
“몰라, 그런 거.”
간호사로 독일로 오신 H 할머니는 여든이 훌쩍 넘은 나이에 혼자 사신다. 하나 있는 따님은 다른 도시에 살며 직장과 육아에 바빠 자주 오지 못한다고 하셨다.
“혹시 스마트폰은 있으세요?”
“아니, 없어. 딸이 몇 년 전에 핸드폰을 사줬는데 안 써. 집 전화 있는데 비싸게 뭘.. ”
H 할머니가 장롱 속에서 꺼내와 보여주신 2G폰에 선을 연결해 충전하고 심카드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거니 ‘없는 국번’이라는 안내가 나왔다. 5년 전에 몇 번 쓰고는 다시 사용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대략난감한 상황이다.
“이모님, 집의 전화선을 이용하여 ‘인터넷’이라는 걸 집에 들어오게 하면 태블릿으로 한국 드라마나 뉴스를 보실 수 있어요. 요즘에는 ‘안테나’ 대신 ‘인터넷’을 통해 그런 걸 봐요”
H 할머니께 최대한 쉽게 ‘인터넷’ 개념을 설명해 드리고 원하시는 대로 통신회사에 전화하여 인터넷 신청을 해드렸다. 코로나로 기술자가 방문하지 않으니 택배로 모뎀을 받아 직접 설치하라는 안내를 받고 며칠 후에 모뎀이 도착하였다기에 다시 방문하여 설치를 도와드렸다.
요즘은 통신회사에서 모뎀의 설치를 소비자가 직접 할 수 있도록 간단하게 개량하는 추세라서 설치에는 어려움이 없었으나 인터넷을 처음 접하시는 H 할머니께는 이것저것 설명이 필요하였다.
연세가 높으신 분들 중에는 스마트폰도, 핸드폰도 없는 분이 생각보다 많다. 젊은 시절, 집에 전화가 없어서 약속을 하려면 동네에 하나 있는 공중전화기로 뛰어가거나 그도안되어 전보로 급한 소식을 전하던 때를 떠올리면 집 전화가 있는 것만으로 충분히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어르신들의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세상은 너무나 빠르게 바뀌어 버렸다.
통신 수단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여 태어나면서부터 스마트폰을 갖고 논다는 소위 ‘Z세대’를 만들어 놓았을 뿐 아니라, 이제는 전체 사회가 개개인에게 세상과의 소통에 ‘인터넷’을 이용하라고 등을 떠밀고 있다. 코로나 판데미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는 이 추세를 더욱 가속화하였다.
아침에 직장으로 출발하지 한고 집에서 컴퓨터를 켜는 홈오피스, 즉 집에서 인터넷으로 동료들과 소통을 하며 근무하는 형태를 국가적 차원에서 권장한다. 대학생은 강의실로 가지 않고 자신의 방의 컴퓨터에 앉아 화상으로 강의를 듣고 질의응답을 한다. 여러 모임과 단체의 회의도 화상으로 진행된다.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모습들이다.
한 어르신은 코로나가 퍼진 이후 아기였던 손자를 못 만나게 된 지 1년이 넘어 아이의 생긴 모습도 이제는 모른다고 쓴웃음을 지으셨다. 박사 학위까지 따고 정년이 넘을 때까지 왕성히 활동하신 그분은 이메일을 사용하고 팩스로 문서를 주고받으니 신문명을 충분히 활용하며 살고 있다는 생각에 스마트폰의 필요성을 못 느끼고 살으셨단다.
자녀들이 자신의 스마트폰을 들고 와서 그 속의 사진이나 영상을 보여주거나 자기들끼리 주고받는 것을 보고 스마트폰이 뭔지 알고 있었지만 그런 것 없어도 사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늘 당당하셨다. 그런데 코로나 확산으로 거의 집에서만 지내게 되면서 스마트폰을 구입하셨다. 영상통화하는 법을 어럽게 익히시며 “진작에 배웠더라면..”‚하고 후회하셨다. 문자를 통해 학식을 쌓은 ‘문자 세대’는 화면 위주의 스마트폰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선 누군가의 조언과 시범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키보드가 없이 화면을 터치하는 것만으로 지시를 한다는 것 자체가 익숙지 않은 사람에게는 넘어야 할 산이다. 시범을 보고 따라 하고 실습과 연습을 반복하여야 익숙해지므로 독학으로는 어렵다.
때문에 사단법인<해로>에서는 건강 요양 문제로 어르신과 상담을 하다가 이야기가 스마트폰 강의, 인터넷 상담 쪽으로 새는 경우가 빈번히 일어난다. 그래서 상담 시간이 두 배로 길어지기도 일쑤다. 시간에 쫓겨도 “인터넷과 스마트폰 사용법”이라는 배움에 목말라하는 분을 외면할 수는 없다. 타국에 사는 입장에서 인터넷이 얼마나 중요한지 누구보다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웬일인지 어르신들은 자녀에게 묻고 배우기보다는 제3자에게 배우는 것을 선호하신다. 그래서 <해로>에서 진행되는 어르신 모임에서는 스마트폰과 인터넷 얘기가 빠지지를 않는다.
사단법인 <해로>는 이미 3년 전부터 ‘스마트폰 교실’을 정기적으로 열었다. 젊은 학생들이 선생님이 되어 어르신의 질문에 답하고 봉착한 문제를 해결해 드리는 시간이다. 각각 다른 문제를 들고와서 설명을 원하므로 강의라기보다는 거의 1 대 1 상담과 비슷하게 진행이 되고 그렇다 보니 여러 명의 봉사자가 동시에 2-3분의 어르신과 둥글게 모여 스마트폰을 익히는 그룹모임 비슷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동시에 여러 명의 봉사자를 구한다는 점이 쉽지 않았고 특별한 지원처도 없었지만 어르신들에게 꼭 필요한 일이라고 판단되었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었는데 이번에 독일 정부에서 지원하는 ‘노인과 디지털화 (Ältere Menschen und Digitalisierung)’ 사업의 한몫을 해로에서 수행하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 한인 어르신들이 디지털화되고 있는 추세를 따라잡고 이를 양껏 활용하여 고국의 뉴스와 소식을 보다 손쉽게 접하고 먼 곳에 사는 가족들과 쉽고 편하게 연락을 취하며 소외되거나 고립되지 않아 몸도 마음도 건강한 노후 생활을 보낼 수 있는 것! 사단법인<해로>가 같이 하고 있다.
이정미/ 해로 호스피스 팀장
후원문의/이메일: info@heroberlin.de
교포신문 1204호 16면, 2021년 1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