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회 삶이 지나온 길을 되돌아 볼 때

“너는 결혼은 했냐?”

80대 치매 어르신에게 중년의 나는 한없이 어려 보이나 보다.

“네에, 저 아줌마예요. 학생이 아니에요.”

뵐 때마다 하시는 똑같은 질문이 벌써 스무 번도 더 반복된 것 같다. 이번에도 역시나 이어지는 레퍼토리는 똑같다.

“아기는 생겼냐?”

“네, 벌써 아들이 둘이나 있어요.”

“어머나, 넌 아들이 있어서 좋겠구나. 난 딸만 셋이 있어.”

“이모님, 요즘은 딸들만 있으면 금메달, 아들과 딸이 있으면 은메달, 아들들만 있으면 동메달도 아니고 목 매달이래요. 딸이 훨씬 더 좋아요. 호호”

나는 농담으로 슬쩍 분위기를 바꾸려 하지만 이미 ‘아들’이란 주제에 꽂힌 어르신은 쉽게 물러나지 않으신다.

“내가 아들을 못 낳고 딸만 낳으니까 우리 남편은 바람이 나서 아들을 낳아준 다른 여자에게 가버렸어. 그래서 내가 하는 수없이 이혼하고, 애들을 혼자 키워야 하니 돈을 벌려고 독일로 왔잖아.”

독일에 와서 병동에서 고생한 일들, 어린 딸 셋을 친정엄마에게 맡겨두고 와서 그리움에 서럽게 울던 시절, 몇 년 만에 한국에 가서 만난 딸은 엄마를 외면하고 할머니만 따라서 서운했던 것.. 늘 하시던 얘기는 여전히 무한 반복된다.

그러다 문득 나를 빤히 보시며 어르신은 불쑥 한마디를 던지신다.

“얘, 화장도 하고 파마도 하고 좀 예쁘게 꾸미고 다녀라. 그래야 의사와 결혼하지. 난 독일에서 의사와 결혼한 덕에 지금도 연금이 나와. 돈이 있으니 애들에게 손 안 벌리고 잘 살잖니.”

아들 때문에 나를 부러워하시던 어르신은 어느새 의사 남편이 없는 나를 책망하신다. 만날 때마다 내 외모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요구가 많으시다. 간호사 자격증에 박힌 그분의 젊을 적 모습은 과연 미스코리아가 울고 갈 정도로 예쁘긴 했다.

평소 치매 어르신들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던 강철 같은 멘탈도 똑같은 책망이 백 번쯤 반복되면 질리기 마련이다. 치매 환우에게는 설명도 부탁도 소용이 없다. 금방 했던 일도 다 잊어버리는 분들이 아니신가!

고민하던 나는 <해로> 단체의 봉사자 심리치료 상담을 하는 수퍼비죤 시간에 애로사항을 털어놓았다. 경험이 많은 수퍼비죠린(Supervisiorin)은 얘기를 듣고 나에게 같이 그분의 일생을 들여다보자고 하였다.

독일에서 재혼한 남편도 이미 10년 전에 돌아가셨고 그 후 독방 아파트로 이사하여 혼자 사시는 것. 평생을 아끼고 절약하여 살면서 모은 돈을 한국에 보내어 자식 교육도 시키고 집도 사고 했었지만 형편이 어려워진 딸에게 집을 팔아 보태주고 나니 이제는 한국으로 가도 머물 곳이 없으신 것. 재혼한 독일 남편 쪽 친척과는 교류가 없고 딸들도 다 한국에 있으니 사실상 무연고 독거노인인 것. 아파트 문의 바깥쪽에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딸의 전화번호를 늘 붙여 놓으신 것. 연금이 나오니 주변에서는 걱정 없는 팔자로 간주하며 관심을 주지 않는 것. 여기저기 아파서 병원에 가니 며칠에 걸친 검사 끝에 심리적 요인에 의한 ‚가상 통증’이라는 진단을 받으신 것 … 사연은 끝이 없다.

다음 방문 시 화장도 파마도 하지 않았다고 어르신이 예의 책망을 주실 때 나는 얼른 다른 대답을 드렸다.

“이모님, 그때 아이들을 떼어 놓고서라도 독일로 오신 것은 참 잘한 결정이셨어요. 그 덕에 아이들도 다 공부시키고 잘 키우셨잖아요. 그뿐만 아니라 의사랑 결혼도 하실 수 있게 되었고요. 덕분에 연금을 받아 아직 아이들에게 손 안 벌리고 이렇게 살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에요? 독일로 오신 것은 정말 잘하신 일이에요! ”

동문서답임에도 내 말을 듣는 어르신의 표정이 한없이 밝아지셨다.

그 후론 봉사자들이 귀가 닳도록 듣던 “꾸며라, 그래서 의사 남편을 얻으라”라는 말이 거짓말처럼 쑥 들어가 버렸다. 그분이 독일에서 재혼한 일에 대한 일에 대한 평가가 비로소 이루어졌기 때문이었다.

사실은 젖먹이를 떼어놓고 독일행 비행기를 탔던 일에 대한 자책감을 그분은 50년의 세월 동안 가슴 깊이 감추고 사셨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 엄청난 일에 대해 그동안 아무도 위로해 주지도, 인정해 주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분은 누군가로부터 그 지나간 삶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인정이 필요하셨던 것이었다.

그 후 얼마 안 있어 딸이 와서 어르신을 요양원으로 옮겨 모셔두고 돌아갔다. 요양원 방에는 집에 있던 액자들을 옮겨 와 세워두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후 어르신은 찾아온 나에게 독일 남편의 사진을 보여주며 물으셨다.

„이 사람은 누구냐?“

이정미/ 해로 호스피스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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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포신문 1206호 16면, 2021년 2월 12일

링크:

[22회] 해로(HeRo) 특별 연재- 삶이 지나온 길을 되돌아 볼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