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회 가족의 무게
어느 날 아침, P 부인이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결국…“
P 부인은 호스피스 환우의 가족이다. 남편이 식도암으로 병원을 자주 들락거리는데 남편이 입원하면 P 부인은 남편이 있는 병원으로 자기를 데려다줄 수 있냐는 부탁을 자주 하셨다.
처음 그분이 우리의 차량 지원을 원하셨을 때 힘이 센 동행자여야 한다는 조건을 거셨다고 한다. 상담을 하던 동료는 나를 염두에 두고 그분께 말하기를,
„차를 갖고 오실 분이 힘이 센지는 모르겠으나 아들을 둘 키운 여자분이세요.“
„아들을 키웠어요? 그럼 되었어요. 나를 부축하는 것이 가능할 거예요.“
그분을 처음 모시러 갔을 때 나는 P 부인이 그렇게 말씀하신 이유를 이해했다. 10년째 심혈관계 질환을 앓고 있다는 그분은 혈액순환에 문제가 있는지 부종으로 다리가 퉁퉁 부어서 제대로 걷기가 힘든 지경이었다.
집안에서는 벽에 손잡이 막대를 곳곳에 부착해 두어 잡고 다니고 밖에서 걸을 때는 바퀴 달린 보행기(Rollator)에 의지하는데 차에 타는 것은 본인 혼자서는 스스로 할 수 없었다. 차로 가 문을 열어드리고 내가 끌고 오신 보행기를 접어 트렁크에 싣고 난 후 돌아올 때까지 그분은 아직도 차에 반쯤 걸터앉아 계셨다.
„미안하지만 내 다리를 차 안으로 좀 넣어주겠어요?“
부종이 심한 다리를 스스로 들어 올릴 수가 없다고 하셨다. 소형 차여서 조수석 좌석을 최대한 뒤로 빼어 공간을 확보했음에도 불구하고 퉁퉁 부은 하체를 접어넣기에는 비좁았고 그곳으로 다리를 끼어 넣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거운 사내아이를 들어 올리던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다리를 번쩍 들어 올리니,
„오호, 정말 기운이 세네요!“
하고 좋아하셨다.
차가 좁아서 죄송했는데 그분은 오히려 차가 작고 낮아서 자신이 타고 내리기가 쉽다고 만족스러워하셨다. 병원에 방문객 휠체어 이동을 신청해 두었으니 도착하면 병동의 간호사가 와서 자신을 휠체어에 태워 남편에게 데리고 갈 거란다. 그러니 차에서 내리는 것을 도와주고 건물 입구까지만 동행해 주면 된다고 했다.
그날 의사의 보호자 면담이 예정되어 있어서 꼭 가야 했는데 평소 자신을 병원에 데려다주던 차량 지원처에서 이번에 거절하여 곤란하던 참에 해로에서 도와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무척 고마워하셨다.
두 시간 후 다시 그분을 모시고 돌아오는 길에 그분은 의사와 한 얘기를 꺼내며 오로지 남편에 대한 염려뿐이었다. 남편이 자신보다 나이가 더 어림에도 암이라는 중병에 걸렸음을 안타까워했으며, 자신의 건강도 좋지 않음에도 일상의 모든 활동은 남편의 퇴원과 진료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자녀가 없어서 P 부인이 직접 매사를 꼼꼼하고 세심하게 관리하였는데 계획을 미리 잘 세웠기에 둘 다 건강이 안 좋음에도 큰 어려움 없이 지금까지 잘 지낼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렇게 남편을 간호하는 사이에 본인의 심장이 나빠지는 것을 돌볼 겨를이 없었던 것 같다.
남편이 입원해 있는 사이에 소파에 누운 채 돌아가신 P 부인의 사인은 심장마비. P 부인도 요양등급이 있는 처지라 요양 간호사가 약을 주러 아침마다 들리는데 그때 발견되었다. 병원에서 아내의 임종 소식을 들은 남편은 망연자실하였고 그 후 병세가 더욱 나빠져서 지켜보는 이들의 안타까움이 크다.
환자를 간병하는 가족은 정신적으로만 힘든 것이 아니다. 병이 오래 지속될수록 가까이서 간병하는 사람의 신체적 부담도 커진다. 간호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과는 달리 자택에서 간병하는 배우자는 혼자 24시간을 전담하기 때문에 그 육체적 피로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환자가 부축이 필요한 경우라면 간병인의 신체적 고통은 배가한다. 간병하는 가족도 정기적인 휴식이 필요하다.
사단법인 <해로>는 환우뿐만 아니라 환우 가족의 부담을 덜어드리는 것에도 적극 지원을 한다. 요양 보험에서 요양 등급자에게 지원하는 경감 금액(Entlastungsbetrag)은 바로 이런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집으로 오는 <해로>의 자원봉사자가 환우 곁에 있는 사이에 간병인이 안심하고 외출할 수 있는 것이 한 예이다. 이 경감 금액은 지정된 간병급여(Pflegegeld)와는 무관한 추가 혜택인데 몰라서 사용하지 않는 분들이 많다.
또한 환자의 요양원 단기 체류(Kurzzeitpflege) 나 대리 간병(Verhinderungspflege)은 간병하던 사람이 아프거나 단기 휴가가 필요할 때는 사용할 수 있는 제도이다. 이런 제반 혜택을 받기 위해 보험사에 신청하는 모든 과정에서 사단법인<해로>는 무료로 도움을 제공한다.
바쁜 자식에게 짐이 되고 싶지도 않은 노부부가 서로에게 의지하며 둘이 사는 것이 요즘 흔히 보이는 모습이다. 나이가 들고 병이 생기는 것은 막을 수 없어도 병자를 수발하며 가족까지 아프게 되는 것은 예방하고 싶은 일이다.
이정미/ 해로 호스피스 팀장
상담/ 자원봉사/ 후원 문의 이메일: info@heroberlin.de,
페이스북:www.facebook.com/altenhilfehero
교퍼신문 1216호 12면, 2021년 4월 23일
링크
[특별 연재] 해로 (Kultursensible Altenhilfe HeRo e.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