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회 장례 꽃장식을 배우는 시간

스스로가 예쁘면서 주변까지 예쁘게 만들어준다는 꽃은 언제 봐도 좋다. 어느 여름날, 들판에 가득한 야생화를 꺾어 와서 화병에 꽂은 후 지인에게 자랑했다. 그것을 본 지인은 한숨을 쉬며 내게 말했다.

„좀 예쁘게 꽂지.. 꽃도 예쁘게 꽂힐 권리가 있어요!“

내 눈에는 이미 무조건 예쁜데 그 지인이 쓱 쓱 만져주니 갑자기 눈에 띄게 멋진 꽃꽂이로 변신했다. 그 후로는 꽃꽂이하는 분들을 무조건 존경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 사단법인 <해로>에서 자원봉사자들의 보수 교육으로 ‚꽃장식 워크숍‘를 한단다. 얼씨구나 하며 얼른 신청했다. 사단법인 <해로>는 매년에 자원봉사자에게 서너 번의 보수교육을 정기적으로 제공한다.

„독일의 묘지에 사용되는 꽃장식은 화병을 제외한 모든 재료를 썩을 수 있는 천연 소재로 사용할 것으로 규정하고 있어요. 시간이 지나면 모두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요.“

호스피스 자원봉사를 하다 보면 장례식에 참석하는 일도 생기기 마련. 가을의 기운이 물씬 감도는 9월의 첫날, 워크숍에 참석한 자원봉사자들은 눈을 반짝이며 강의 내용에 귀를 기울였다. 독일에서 플로리스트 최고 전문가 과정을 이수한 강사 박태연 씨는 매주 자신의 꽃 가게에서 꽃꽂이 수업을 진행한다. 오늘은 장례용 꽃장식에 대한 이론과 실기가 겸비된 워크숍이라 행사장에는 화환 제작을 위한 모든 재료가 미리 작업대 위에 준비되어 있었다.

화환 재료뿐만 아니라 각양각색의 꽃이 만발한 그곳은 교실이라기보다는 편안한 힐링 장소였다. 독일의 장례식은 고인이 평소에 좋아했던 꽃을 위주로 준비한다고 설명하는 강사는 어느 할머니가 손수 가꾸시던 정원의 꽂을 직접 따서 그분 장례식 꽃 장식을 한 사례를 사진과 함께 소개하였다. 고인이 좋아하는 꽃으로 장식된 장례식이 유가족에게 많은 위안을 주었다는 설명을 듣자 화려한 색의 화환이 한국의 하얀 국화 화환만 보던 내게 무척 생경하였지만 돌아가신 분에게도, 남아있는 가족에게도 그 꽃이 주는 의미가 남달랐을 것이라는데 생각에 경건함마저 느껴졌다. 강사는 선배 플로리스트의 작품이라며 다른 사진을 꺼내 보여주었다.

„이 유골함 꽃장식은 특이한 형태인데 사연이 있어요. 유골함 주인이 7세 된 아이였어요. 아이 부모가 놀이터에서 즐겨 타던 그네에 마지막으로 아이를 태우고 싶다고 해서 민들레 홀씨를 소재로 하여 그 형태로 제작된 것이에요. 가운데 깊숙한 곳이 유골함이 들어간 자리에요. 바람에 날아가는 민들레 씨앗처럼 아이도 그네를 타며 더 이상 아프지 않은 곳으로 자유롭게 훨훨 날아가라는 부모의 소망이 담긴 장식이에요.“

말하던 강사도 듣던 수강생도 모두 숙연해졌다. 젖은 눈가를 닦아내며 꽃꽂이를 시작하는 이들의 마음가짐이 남달라졌다.

드디어 실전이 시작되었다. 강사가 말해준 크기로 꽃을 잘라 순서대로 꽂기만 하면 된다는데 왜 여전히 내겐 어려운지… 꽃을 어디에 꽂아야 할지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더 꽂을 데가 없어요!“

„호호, 이렇게 빈자리가 많은데 무슨 말씀이세요. 일어서서 보시면 안 보이던 빈자리가 보일 거예요. 거기에 꽂으시면 돼요.“

강사의 말에 힘입어 일어나서 주변을 둘러보니 어느새 모두 화환을 예쁘게 만들어 마무리 작업에 한창이다. 호스피스 자원봉사를 하신 지 오래된 C 부인은 자신의 화환을 다듬으며 말씀하신다.

„나는 내 장례식을 해양장으로 하기로 결정하고 이미 서면으로 그에 대한 서류를 만들어 두었어요. 유골함은 소금으로 된 것이라 그것을 바다에 띄우면 소금이 녹으며 유골 가루도 천천히 가라앉고 그 위를 장식한 꽃들만 물 위에 둥둥 뜬다고 해요“

자신의 장례식을 말씀하시는 그분의 고운 얼굴에 숙제를 다 한 듯한 후련함과 세상을 마감한다는 두려움과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한다는 슬픔이 뒤섞여 복잡한 표정이 떠오른다.

웰빙과 함께 웰다잉이 떠오르는 고령화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함은 여전히 어려운 숙제인 것 같다.

글 이정미/ 해로 호스피스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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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포신문 1234호 16면, 2021년 9월 10일

[특별 연재] 해로 (Kultursensible Altenhilfe HeRo e.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