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회 내어주는 사랑
카메라가 돌아간다. 앵글 속에는 젖은 흰 화장지가 둘둘 감긴 콜라병이 보인다. 콜라병 주인으로 보이는 젊은이가 웃으며 카메라를 쳐다보며 말을 한다.
“여기는 콜라가 무척 귀한데 간신히 구해도 냉장고가 없어서 미지근한 콜라로 마셔야 해요. 이 더위에 정말 괴로운 일이죠. 그래서 궁리하다가 과학 시간에 배운 원리가 생각나서 이렇게 젖은 휴지를 사용하게 되었어요. 병에 감긴 휴지의 물이 증발하며 열을 빼앗아가면 콜라가 시원해지거든요.”
화면 속의 젊은이는 아는 것도 많다. 카메라는 계속하여 바리깡으로 제 머리를 쓱쓱 깎는 그를 촬영한다. 그가 사는 곳은 이발소가 없다고 했다. 전기도 안 들어오고,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훨씬 더 많은 곳이란다. 병원도 없고 학교도 없고 한국 사람도 없는 생소한 그곳은 머나먼 아프리카 땅 수단. 거기서 그는 그곳에서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하며 사는 선교사였고 가톨릭 사제였고 의사였고 교장 선생님이었고 악단 지휘자였다.
그가 사는 낯선 땅의 풍물과 남다른 일상은 호기심을 불러일으켜 취재진이 찾아들었고 몇 번 TV 방송을 탔다. 그러다가 몇 년 후 그가 갑자기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는 많은 사람이 깜짝 놀랐다.
그의 생애 마지막 시간에 촬영된 영상이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져 방송을 타고, 다시 영화로 만들어지고, 영화가 관객을 동원하여 유명해지고 그가 애타게 후원을 호소하던 수단의 가난한 마을 ‘톤즈’도 덩달아 유명해졌지만, 그는 더 이상 톤즈에 없었다. 영화 ‘울지마 톤즈’는 내전이 끝난 아프리카 남수단의 가장 가난한 마을에서 버려진 채 살아가는 사람을 사랑으로 돌보던 살레지오 수도회의 이태석 신부의 이야기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 움막을 쳐서 사람들을 치료하고 나무 아래 아이들을 모아놓고 글을 가르치던 그가 어느새 벽돌로 병원과 학교를 세우고 군악대를 만들어 악기를 직접 가르치고 아이들에게 금술 장식이 달린 악단 유니폼을 입히고 멋진 연주와 함께 아프리카 흙길 위를 행진시키는 것을 보며 관객은 깊은 감동을 받는다. 한 사람의 진심 어린 노력이 얼마나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하는지 보면서도 믿기 어렵다.
사단법인 <해로>가 이 영화를 자원봉사자 교육생들에게 보여주자 모두 깜짝 놀랐다. 독일에 살았기에 한국 소식이 늦어 영화가 개봉한 지 이미 10년이 지났지만, 이 이야기를 처음 접한 것이다. 영화를 본 후 모두 인터넷을 뒤지고 관련 영상을 찾으며 점점 뜨거워졌다. 그리고 10년 만에 영화의 후속작이 만들어졌다는 소식에 새 영화를 궁금해하고 그 마을의 사정이 알고 싶어 했다.
‘울지마 톤즈’를 만든 구수환 감독은 우리의 바람을 전해 듣고 바쁜 와중에도 독일 교민에게도 이태석 신부님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며 기꺼이 온라인 강연에 응하였다. 그렇게 마련된 것이 지난 10월 12일에 있었던 <해로 구수환 감독 영화 강연회>다.
온라인 강연으로 실시간으로 진행된 것이라 한국과 독일의 시차를 고려하여 오전 10시에 시작한 강의에는 코로나로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없어 두 장소에 나뉘어 소규모로 진행되었다.
구수환 감독은 자신의 만든 영화를 보여주며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를 풀어놓았다. 원래 TV 방송국에서 고발 프로그램을 만들던 그는 사실 이태석 신부님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신부님이 돌아가신 후 그에 대한 보도를 접하고 “도대체 어떤 사람이었길래 모두 그 사람에 대하여 떠들어대는가” 하는 의구심에서 고인의 행적을 찾기 시작하였고 특유의 직업정신이 발휘되어 여러 자료를 전문적으로 찾고 사람들은 만나면서 이태석 신부님에게 점점 더 빠져들었고 그렇게 모은 자료로 영화 ‚울지마 톤즈’를 만들어 개봉하게 되었다고 한다.
“저는 문제를 찾아다니는 PD였습니다. 사회악을 고발함으로써 세상을 더 낫게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태석 신부님을 취재하며 저는 전혀 다른 걸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악행을 쫓아다니던 저가 선행을 쫓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선행의 파급력이 얼마나 큰지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영화는 신선한 반향을 일으켰고 톤즈 마을을 위해 써달라는 후원이 줄을 잇자 ‘이태석 재단’ 이 만들어졌고 이 재단은 톤즈의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다. 톤즈를 직접 가보고 아이들을 만나본 자신이 어쩌다 보니 재단의 이사장을 맡게 되었다고 그는 말한다.
그 후에도 톤즈 마을을 여러 번 찾아가던 그는 ‘울지마 톤즈‘를 만든 지 10년 만에 후속작 ’부활’을 다시 세상에 내밀었다
“저는 이 신부님이 교육의 혜택을 주려고 그렇게 노력했던 그 아이들이, 전쟁의 상처를 치료해 주고 교사가 부족하면 직접 가르쳐서라도 교육 기회를 주려고 했던 그 아이들이 그 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10년 후 각자 흩어져 제 갈 길을 찾아가는 와중에도 이태석 신부를 본받으려 노력하는 아이들을 통해 부활의 의미를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강연회에 참여하신 한 어르신은 영화 ‘울지마 톤즈’ 에서 신부님이 돌아가신 걸 듣고 통곡하던 아이들이 영화 ‘부활’에서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며 “우리도 좋지만 젊은 아이들이 꼭 봐야 할 영화다”라고 말한다.
“저는 가톨릭 사제에 대한 영화를 만들었지만, 가톨릭 신자는 아닙니다. 저는 불교 신자이지만 이태석 신부님을 보며 종교가 추구하는 목적은 같다고 느낍니다. 세상은 변화시키는 가장 큰 힘은 사랑입니다.”
감독의 맺음말에 여운이 남는다.
글 이정미/ 해로 호스피스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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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포신문 1240호 16면, 2021년 10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