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회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

한국을 대표하는 ‘시대의 지성’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지난 2월 26일 별세했다. 고인은 수년 전에 암 진단을 받은 후, 자신이 고령이라는 것과 얼마 남지 않은 소중한 시간을 더 생산적인 곳에 쓰기로 결단하고 항암치료를 받지 않기로 하였다. “잘 사는 것이 잘 죽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책으로 쓰고, 꼭 들려주고 싶은 말들을 고통을 참아가며 강의하였다. 자신의 죽음을 기록할 다큐까지 찍으며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면서 담담하게 죽음을 맞았다.

  이어령 박사가 마치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처럼 죽음을 맞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신앙 때문이었다. 이 박사는 경향신문 논설위원을 할 때부터 같은 신문사의 친한 친구로부터 예수를 믿으라는 전도를 수십 년간 계속 받았지만, 지성인으로서의 자존심 때문인지 믿음의 길로 들어서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사랑하는 딸 이민아 목사가 실명의 위기를 맞았을 때, 피조물의 한계를 깨닫고 딸이 다시 볼 수 있다면 남은 생을 주님께 바치겠다고 서원하였고, 73세의 늦은 나이에 세례를 받고 기독교인이 되었다. 그 후 딸의 눈이 기적적으로 치유되는 체험을 하였지만, 결국 그 딸이 먼저 암으로 죽게 되자 하늘나라에서 사랑하는 딸을 다시 만날 수 있도록 신앙으로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였다.

  이어령 박사는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김지수 저)에서 죽음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죽으면 ‘돌아가셨다’고 하잖아. 탄생의 그 자리로 가는 거라네. 고향이지.” 이어령 박사는 신앙인에게 주어지는 특권인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간다는 확신이 있었다. 거기서 사랑하는 딸을 만날 기대를 가지고 죽음을 맞았다.

  이어령 박사와 마찬가지로 신앙인에게 죽음은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다. 예수님은 죽음의 길을 염려하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아라. 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내 아버지의 집에는 있을 곳이 많다.”(요 14:1~2)라고 하셨다. 진정한 믿음을 가진 신앙인은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믿음으로 죽음을 준비한 사람들에게 죽음은 두려워할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사도 바울처럼 “내가 이 세상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을 원하고 또 그것이 훨씬 더 좋지만”(빌 1:23)이라고 고백하며 하늘나라를 사모하게 된다.

  필자는 호스피스 사역자로 봉사하면서 수백 명의 환자들과 마지막 시간을 함께 보냈다. 죽음 앞에 있는 분들과 함께 손잡고 기도하였고, 두려울 수밖에 없는 죽음의 문 입구까지 함께 찬양하며 동행하는 특별한 봉사도 하였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서 자신을 위한 마지막 기도가 될 “죽음에 대한 기도”는 다른 어떤 기도보다 잘 응답해 주시는 것을 아주 많이 보았다.

  믿음이 좋은 P 할머니는 예배를 드리는 가운데 찬양하며 천국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기도하셨다. 기도하신 대로 P 할머니는 촛불이 꺼지듯 호흡이 다 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소리를 내지는 못했지만 끝까지 입술로 찬양을 따라부르며 평안하게 천국으로 이사가셨다.

  “부자가 편히 죽을까요, 가난한 사람이 편히 죽을까요?”하고 물으면 많은 사람이 가난한 사람이 편히 죽을 거라고 대답한다, 이유는 가진 것이 없어서 미련이 없기 때문일 거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경험상으로 보면, 죽음을 맞는 태도는 빈부 귀천이나 남녀노소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오직 죽음을 잘 준비한 사람이 죽음을 편히 맞이한다. 그러나 우리는 마치 이 땅에서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처럼 죽음을 준비하지 않고 살아가는 경우가 아주 많다.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 산실인 비텐베르크대학(Leucorea)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Hodie Mich, Cras Tibi’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라고 새겨져 있다. 죽음이 오늘은 나에게 찾아왔지만, 내일은 너에게 찾아갈 것이라는 말이다. 타인의 죽음을 보면서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면서 겸손한 태도로 자신의 본질과 내면을 성찰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이 말은 여러 공동묘지의 입구에도 새겨져 있는 문구로 “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와 같은 맥락의 말이다. 성경도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히 9:27)이라고 하였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모르기에 미리미리 죽음을 준비하며 살아야 한다.

  “잘 사는 것이 잘 죽는 것”이라고 하였다. 돈이 많은 사람을 잘사는 사람이라고 하던 때가 있었지만, 그것은 잘못된 표현이다. 돈이 많은 사람은 단순히 부자(富者)라고 해야 한다. 잘 사는 사람은 매일매일의 삶을 후회와 원망 없이 살아가는 사람일 것이다. 대구 지하철 참사와 같은 갑작스럽게 죽음에 맞닥뜨린 사람들이 마지막에 남긴 통화와 메시지는 “사랑한다”였다고 한다. 혹시라도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사랑한다”, “감사하다”라고 표현하지 못하고 죽음으로 이별한다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이 되겠는가? 가장 중요한 말과 꼭 해야 하는 말을 평상시에 자주 표현하며 사는 것도 잘 사는 것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30초도 걸리지 않는 것을 못 한다면 얼마나 후회막급일까? 마지막에 꼭 하고 싶은 말을 오늘 지금 당장 표현하며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 될 것이다.

  더욱 지혜로운 방법은 이런 내용을 유언장을 미리 작성하여 기록해 두는 것도 잘 사는 방법이 될 것이다. 부모님의 수의(壽衣)를 미리 준비해드리면 장수한다는 말이 있다. 죽음을 준비한 어르신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드려 오히려 더 건강하게 사시도록 효도하는 지혜로운 방법이다. 이어령 박사와 같이 준비하고 맞는 죽음이 복되고 아름답다.

“여호와께서는 성도의 죽음을 소중하게 보신다.” (시편 116:15)

박희명 선교사 (호스피스 Seelsor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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