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1970년대 자동차가 그리 많지 않던 시절에, 버스나 택시, 트럭의 운전석 위에 흔히 붙어 있던, 하얀 잠옷을 입은 아이가 무릎을 꿇고 두 손 모아 기도하고 있는 “오늘도 무사히”라는 그림을 기억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이 그림은 이발소 그림처럼 다소 예술성이 없어 보이지만, “조슈아 레이놀즈”라는 18세기 영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었던 초상 화가의 작품이다.
그림 속 아이의 기도하는 손과 하늘을 바라보는 눈에는 기도를 꼭 들어주어야 할 것 같은 간절함이 가득하다. 이 아이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선지자 “사무엘”이다. 사무엘은 어머니 “한나”의 오랜 기도 끝에 얻은 아들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하나님께 드려져서 극도로 혼탁하던 시대의 이스라엘을 강성케 했고, 평생을 오직 하나님과 민족을 위해 헌신하며 돈과 권력을 탐하지 않은 청렴하고 영성이 뛰어난 최고의 지도자였다.
화가 “레이놀즈”는 시골 출신으로 난청이 있어서 정규 교육은 받지 못했지만, 그의 재능을 알아본 누이들의 도움으로 당대 거장들에게 사사를 받으며 화가로 성공할 수 있었다. 어쩌면 이 그림은 난청이 있던 레이놀즈가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평생 뒷바라지한 누이들의 기도와 자신의 소원을 표현한 그림일 수도 있다.
짙은 먹구름 사이로 사무엘을 비추는 빛줄기는 힘든 고비를 맞을 때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큰 욕심을 내지 않고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아낸 자기의 삶에 대한 표현이었을 것이다.
우리 대한민국은 참 특별한 나라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해서 다른 나라의 원조를 받아야 했던 나라가 지금은 다른 나라를 돕는 세계에서도 유일한 나라가 되었다. 가장 가난했던 시절을 사셨던 어른들은 지금처럼 잘사는 대한민국을 전혀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발전을 한 이유를 들자면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인의 관점에서 한 가지만 생각해보면, 애국가를 말하고 싶다. 우리나라는 기독교 국가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 애국가에는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라는 가사가 들어가 있다. 우리나라는 “하늘님” 사상이 민족의 얼 속에 담겨 있는 독특한 민족이다. 우리나라는 종교가 달라도 복을 주시는 하느님을 믿고 의지하는 마음은 모든 국민이 다 같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은 복을 주시는 분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격언이 있다. 우리 민족은 힘들고 어려울 때 스스로 돕는 자의 삶을 살아왔다. 그야말로 먹고 살기에 급급했던 시절에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이역만리 독일에까지 와서 일하기를 주저하지 않은 파독 근로자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나라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힘든 노동과 말도 안 통하는 낯선 이국땅에서의 모진 고생을 인내로 이겨낸 우리 어른들의 땀과 눈물이 바로 스스로 돕는 자의 삶이었다고 믿는다.
파독 60주년을 돌아보면, 하늘은 틀림없이 스스로 돕는 자를 도우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스스로 돕는 자의 삶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처한 환경과 상황에 따라 계속해서 현재형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오늘도 무사히” 그림에 나오는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 자식이 없었지만, 첩은 아들이 있어서 본처인 한나를 멸시하고 구박까지 하였다. 그때는 이스라엘에 사람들이 자기 생각에 옳은 대로 제멋대로 살던 시대였다. 한나는 아들을 달라고 성전에 나가 계속해서 기도했다. 그런데 한나의 기도가 깊어지자, 한나는 아들을 주시면 주님께 바치겠다고 서원한다.
어떻게 얻은 아들인데 그 아들을 자기가 키우지 않고 하나님께 바친단 말인가? 한나는 깊은 기도 가운데, 자기가 낳은 아들이 자기에게만 만족을 주는 아들이 되기보다는 조국 이스라엘을 위해 하나님의 쓰임을 받기를 원했던 것이다. 참된 기도는 한나의 기도와 같이, 자기의 유익보다는 나라와 공공의 더 큰 유익을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을 하나님이 더 기뻐하시고 복을 주신다.
우리 해로에서도 오랫동안 기도하고 있는 것이 있다. 파독 1세대 어르신들을 더 잘 섬길 수 있는 더 넓고 좋은 공간을 주시도록 기도해 왔다. 그런 장소를 주시면 어르신들을 위한 쉼터와 여러 가지 유익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려고 하였다. 사실 해로의 재정 상황으로는 무리가 있는 게 현실이다. 집을 구하기 힘든 베를린의 상황에서 더 넓고 좋은 공간을 찾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기도는 우리의 형편을 뛰어넘는 놀라운 능력이 있음을 믿는다.
그동안 우리 “해로”는 여러 나라의 이주민 단체들이 모여 있는 구청 소유 건물 0층을 우리의 쉼터로 주시도록 계속 기도해왔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가지고 우리 동포 어르신들을 전심으로 섬겼고, 구청과도 좋은 협력관계를 유지하며 계속해서 문을 두드려왔는데, 드디어 구청에서 그 장소를 카페로 임대하겠다는 공고가 나왔다. 좋은 기회가 왔지만, 계약조건이 무척 까다롭다. 경쟁도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장소를 얻으려고 하는 갈망이 우리만큼 간절하고 우리만큼 꼭 필요한 사람이 있을까? 우리가 운영한다면 우리 어르신들만이 아니라, 지역 사회를 위해서 도움이 되도록 잘 운영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이제 남은 것은 최선을 다해 사업계획서를 준비하면서 좋은 결과가 있도록 기도하는 것이다.
우리가 오랫동안 품어온 꿈이 이루어지도록, 우리 교포신문 독자들도 한마음으로 기도해 주시길 소망한다.
“너는 나에게 부르짖어라. 그러면 내가 너에게 응답할 것이며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놀라운 일을 너에게 보여 주겠다.”(예레미야 33:3)
박희명 선교사 (호스피스 Seelsorger)
1324호 16면, 2023년 7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