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회 기억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마약류에 대한 규제가 엄격해서 그동안 ‘마약 청정국’이라고 불렸었는데, 요즘은 마약 문제가 사회적으로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유명 연예인들과 부유층 마약 사범들에 대한 뉴스가 이목을 끌고 있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어린 학생들에게도 유혹의 손길을 뻗치고 있고, 연령과 계층을 가리지 않고 범죄와 돈벌이의 수단으로 마약을 비밀리에 무차별로 유통시키는 상황이 되고 있다. ‘한 번쯤인데 어때’하는 단순한 호기심조차도 인생을 망치는 무지막지한 결과를 초래하기에 마약 사용은 위험하다. 유혹에 이끌리거나,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범죄에 이용되어 한 번이라도 마약에 빠지게 되면, 죽어야 끝이 난다고 말할 정도로 마약은 영영 헤어 나올 수 없는 덫이 되고 만다. 마약을 단 한 번이라도 사용하면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로 그 중독성이 매우 심각하기 때문이다. 마약중독의 심각성을 생각한다면, ‘마약 김밥’ ‘마약 떡볶이’ 등과 같은 말도 마약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으므로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

  사실 아편에서 얻는 모르핀 같은 천연 마약은 극심한 통증을 위한 치료제로서 신이 내린 선물이라고 했다. 의학 기술의 발달로 아스피린이나 이부브로펜과 같은 진통제가 개발되었고, 매우 극심한 통증의 환자들에게 사용하는 합성 마약도 개발되었다. 어떤 경우에든 마약성 진통제는 반드시 전문의사의 처방에 따라 목적에 맞게 사용해야 한다.

  우리 암환자 어르신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통증이다. 암환자의 통증은 매우 극심하기에, 마약성 진통제로 통증의 강도를 줄여주어야 한다. 그러나 많은 환자들이 중독에 대한 걱정으로 마약성 진통제의 사용을 두려워하며 통증을 그냥 참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환자 본인은 물론 가족까지도 함께 힘든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그와 반대의 경우도 있다. 환자는 통증으로 많이 힘들어하는데, 병원에서 마약성 진통제의 처방을 꺼리는 경우이다. 해로 봉사자의 아버지께서 말기 암으로 심한 통증을 호소하는데도 병원에서 통증 조절을 제대로 못 해주어 무척 힘들어하시다가 돌아가셨다. 이런 경우는 적극적으로 마약성 진통제를 사용하여 통증을 줄여주어야 마땅하다. 임상 경험과 연구 결과에 따르면 통증이 심한 환자들은 마약에 중독될 일이 없다고 한다. 따라서 통증을 참는 대신에, 규칙적으로 마약성 진통제를 포함하여 적절한 처방을 받아 진통제를 사용함으로써 환자의 삶의 질을 최상으로 높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 몸에서도 천연적인 마약 성분이 분비된다. 그것은 ‘몸 내부에서 발생하는 모르핀’이라는 뜻을 가진 ‘엔도지너스 모르핀 (endogenous morphine)’ (간단히 ‘엔도르핀’)이다. 엔도르핀이라는 우리 몸의 ‘천연 마약’은 심각한 사고나 출산 등과 같이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만나면, 그 고통을 이길 수 있도록 우리 몸에서 다량으로 분비된다. 하지만 위급상황이나 끝나면 엔도르핀은 급격히 줄어든다. 환자가 아닌 일반인이 마약을 복용하면, 처음 짧은 한순간은 최대의 쾌락과 행복감을 주는 것 같지만, 마약이 우리 몸에서 나오는 엔도르핀의 분비가 더 이상 안 되도록 만들어 버리기 때문에, 약 기운이 떨어지면 남는 것은, 쾌락이 아니라 극심한 고통뿐이다. 고통을 감당할 만한 ‘천연 마약’인 “엔도르핀이 우리 몸에서 분비된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는 고통 앞에서도 안심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일상에서도 엔돌핀이 나오는 삶을 살 수 있다. 누군가에게 기쁨을 주는 일들을 하면 우리 안에서 엔도르핀이 솟아난다. 힘든 봉사를 하고서도 기쁨과 성취감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우리 안에서 엔도르핀이 나와 우리의 마음을 만져주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의 삶을 기억해 주고 인정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큰 위로를 얻게 된다. 이런 일들은 자신이 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소속감을 주어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이길 엔도르핀이 되어준다.

  지난 12월 9일에 베를린의 주독일한국문화원(원장 양상근)에서는 세계문화유산인 한국의 김치를 독일에 소개하는 “김치 워크샵”과 함께 직접 김치를 담그는 체험 행사가 있었다. 이번 한국문화원의 김치 행사는 전문가들이 김치를 소개하고, 미리 준비한 절임 배추와 김치 양념을 가지고 독일의 젊은이들이 직접 김치를 만들어 보는 행사였지만, 한국문화원의 특별한 배려로 베를린에 사는 파독 1세대 어르신들 중에서 요양 등급을 가진 환자들에게 드리기 위한 김치 100kg을 만드는 계획도 함께 진행하였다. 독일의 젊은이들도 자신들이 만든 김치가 환자들을 섬기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무척 기뻐하며, 배운 대로 정성껏 김치를 만들었다. 이렇게 만든 김치를 파독 1세대 어르신들의 가정을 방문하여 전달해 드렸는데, 받으시는 분들마다 너무 기뻐하며 “기억해 주셔서 고맙습니다”하고 감사를 표하셨다. 몸이 아파서 외부 활동을 잘 못하지만, 자신들을 교포사회가 여전히 기억해 주고 있다는 안도의 마음이 느껴졌다. 비록 작은 김치 선물이지만, 우리가 파독 1세대 어르신들의 노고를 기억하고 있고, 언제든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서로 도울 준비가 되어 있다는 마음을 전달하는 계기가 되었다. 예년보다 추운 겨울에 노년의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계시는 파독 어르신들에게 김치가 엔도르핀이 되어, 질병도 이기고 추위도 이겨내는 힘이 되길 소망한다.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 (히브리서 13:16)

박희명 선교사 (호스피스 Seelsorg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