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회 내 맘에 흐르는 추억의 강물
우리는 날마다 “나”라는 영화에서 내가 주인공이 되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으며 살고 있다. 이 영화의 스토리는 내가 주인공이고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내가 선택하며 걸어가는 하루하루를 “원더풀 라이프”로 만드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내가 매일 살아가는 일상들이 모여서 나의 삶이 되고 추억이 되어 우리 마음에 오래 간직된다. 그러나 누구에게는 추억이 상처로 남아 아름답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가 아름다운 추억을 많이 쌓으려면 후회할 일을 하지 않는 반듯하고 멋진 인생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 사노라면 때로는 어려운 일을 만나게 되지만, 그때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듬으면서 사랑해야 한다. 자기 자신은 물론 자기와 함께 하는 모든 것들을 사랑할 때 힘겨운 삶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게 된다.
해로 노래교실은 1966년도에 1차 파독간호사로 독일에 와서 베를린에 정착한 간호사들의 모임인 “민들레” 모임이 중심이 되어 시작되었다. “민들레” 모임은 도와주는 사람이 없는 이국땅에서 우리끼리 서로 도우며 살자고 만든 자조(Selbsthilfe) 모임으로, 어려울 때 서로 돕는 우리나라의 상부상조 정신을 독일에서 일찍이 시작한 것이다. 시간이 가면서 건강상의 이유로 참석하는 회원은 점점 줄어들었지만, 지금도 매달 한 차례씩 10여 명의 회원이 모여서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정다운 친교를 이어가고 있다.
민들레 모임이 주축이 되어 시작한 해로의 노래교실은 지금은 나이와 성별을 불문하고 “함께 복되게 나이 들어가기” [해로(偕老)하기] 원하는 많은 분이 참여하면서 모임 장소가 비좁을 정도로 많이 발전하였다. 노래교실은 처음에는 작곡과 음악치료를 전공한 봉지은 해로 대표가 지도하였고, 지금은 성악가인 김은용 목사가 지도하면서 피아니스트인 서미현 호스피스 팀장과 호흡을 맞춰 열정을 다해 섬기는 행복한 모임이다.
노래교실 어르신들이 최애(最愛)하는 노래 중에 “내 맘의 강물”이 있다. 이 노래는 KBS 어린이합창단 단장을 지냈고, ‘둥글게 둥글게’, ‘앞으로’ 등 많은 동요를 지으며 ‘동양의 슈베르트’라고 불렸던 이수인 선생이 작사 작곡한 우리 가곡이다. ‘비바람이 불고 모진 된서리’가 내리는 고된 날들을 살아오셨지만, 그 삶을 ‘영롱하고 고운 진주알’로 빚어내신 우리 어르신들의 삶을 잘 나타내는 아름다운 곡조와 가사로 되어 있다. 이 노래를 부르시는 우리 어르신들은 마치 자신이 살아온 삶을 영화로 되돌려 보듯 추억과 함께 감격의 마음으로 “수많은 날은 지나갔어도 내 맘의 강물 끝없이 흐르네”를 부르며 눈시울을 붉히며 노래하신다. 노래를 부르며 내 맘에 흐르는 강물에 추억을 흘려보내며 마음을 힐링하신다.
해로는 우리 어르신들의 추억이 모여 역사가 되기에 이를 소중히 생각한다. 그래서 파독 사진전도 계속하며 지나간 추억을 정리하는 일도 하고 있고, 개인적인 생애를 정리하는 시간도 가지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오늘이라는 시간을 살아가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어르신들과 함께 행복한 추억을 한 장씩 새롭게 써가는 일도 소중히 여기고 있다.
지난 7월 23일에는 노래교실 어르신들과 봉사자들 50명이 버스를 빌려서 한 시간 정도의 거리에 있는 Lübbenau Spreewald로 하루 소풍을 다녀왔다. 버스를 빌려 소풍을 가는 것은 해로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자조 모임인 “노래교실”은 회원들이 내는 회비로 운영하고 있는데, 오랫동안 모은 회비가 있어서 추가로 회비를 내지 않고도 소풍을 갈 수 있었다. 그동안 회원들의 회비를 허투루 사용하지 않았고, 지휘자나 반주자 모두 자원봉사로 섬기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해로의 봉사자들은 이번 소풍을 어르신들에게 즐거운 추억여행으로 만들어 드리려고 세심하게 준비하였다. 날씨도 참 좋았고 ‘민들레’ 모임의 어르신들도 오래간만에 참석하셔서 반가운 만남으로 소풍이 시작되었다. 특별히 항암치료 중인 어르신도 두 분이 참석하셔서 너무 좋아하셔서 뜻깊고 의미 있는 소풍이 되었다.
Lübbenau에 도착하여 이탈리아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으로 품위 있게 식사를 할 수 있어 너무 좋았다. 이어서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인 Spreewald에서 명물 카누 배를 타고 숲속 수로를 지나며 노래도 부르고 좋은 추억을 만들었다. 이날 소풍의 하이라이트는 파독 어르신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한국에서 오신 색소포니스트 심삼종 교수님의 콘서트였다. 심 교수께서는 어르신들이 어릴 적 많이 불렀던 추억의 동요부터 어르신들이 좋아하시는 프로그램으로 연주도 하고 함께 합창도 하는 특별한 노래교실을 만들어 주셨다. 특별히 뤼베나우 복음교회에 사전에 협조와 홍보를 요청하여 교회 성도들도 많이 참석하였는데, 너무 좋아서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적이었다고 직접 찾아와 감사를 표하는 분들도 계셨다. 색소폰 콘서트와 어르신들의 합창이 어우러진 아주 특별한 소풍 콘서트는 귀도 호강하고 마음도 힐링이 되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우리 어르신들은 그동안 연습한 ‘내 맘의 강물’과 ‘선한 능력으로’, ‘홀로 아리랑’ 등을 발표하며 1학기 방학식을 하였다.
하루의 소풍이었지만 우리 어르신들에게는 즐거운 추억이 되고, 또 내일을 힘차게 살아가 힘과 용기를 주는 하루가 되었기를 바라며, 앞으로도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 드리는 해로가 되기를 소망한다.
“내가 고난을 당한 것이 나에게 유익이 되었으니, 내가 이것 때문에 주의 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시 119:71)
박희명 선교사 (호스피스 Seelsorg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