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회 ‘자신 사랑하기’의 첫 걸음

내가 아는 파독 간호사 어르신 한 분. 그는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다. 언젠가, 앞으로 하고 싶은 소원이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그는, ‘나에게 주어진 하루하루의 일정을 잘 마치고 평화롭게 죽는 것’이라고 했다. 어쩌면 욕심 없는 소박한 소망이다. 하지만 누구 하나 제외할 것 없이 죽음의

16회 제5회 치매예방의 날 행사

2016년, 베를린 한인사회에서 화제를 모은 사건이 있었다. 베를린에 소재한 작은 돌봄단체의 행보였다. 특별한 행사를 진행하며, 노년시대 떠올리고 쉽지 않은 단어를 지상으로 끌어올리며 담론화를 시작한 것. “난 아직 아닌데, 그래도 혹시 몰라!” “언젠가 나도 그런 때가올지 몰라. 늘 깜박깜박해!” “멀쩡하던 김씨도 그거 걸렸대” 기대 반, 호기심 반으로 행사장에 몰려든 이들은

15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이웃!

이국 땅에서 홀로 나이 들어가는 것은 고독의 범주를 넘어선 생활의 문제다. 젊었을 때는 노년의 삶을 예측하지 못했다. 휴가 때면 여행을 다니고 주변에 한인과 독일인 친구들도 많았다. 하지만 나이가 점차 들어가면서 주변의 친구들은 앞서거니 뒷서거니 먼 여행을 떠나게 된다. 특히 홀로 된 어르신들이 중병에 걸렸을 경우 난감해진다.

14회 베를린에서 봉사를 마치며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무언가 할 일이 생긴다는 게 나에게도 도움이 되는 것이라는 점을 깨닫게 해준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몰랐던 부분을 새로 알게 되고 나 자신과 미래 나이듦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자원봉사 교육생 K) “인간관계에 대해 생각을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13회 치매환우와의 소통, 어떻게 할까

어느 파독광부 어르신의 이야기다. 광부생활 3년 계약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가려다 독일 정착을 결정했다. 다행히 직업을 구했다. 매일 갇힌 공간에서 기계만 만지는 일이었다. 하루 종일 딱딱한 기계와 홀로 씨름해야 했던 그는 몇 달이 지나자 미칠 것처럼 답답해졌다. 소통의 부재 탓이었다. 이후 간호사인 아내의 권유로 선택한 것이

12회 함께 맞는 비

2015년에 시작된 HeRo(해로)는 ‘우리는 어디서 어떻게 늙어가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코멘트에서 출발했다. 해답은 늘 사람이었다. 그야말로 이국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도움활동의 필요성으로 귀결되었다. <해로>의 입술로 연재를 시작하지만,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재독 동포들의 목소리를 그릇에 담으려 한다. 이 글이 고단한 삶의 여정을 걷는 이들에게 도움의 입구가 되길

11회 사회적 유대관계가 삶을 바꾼다

겨우 몇 달만인데 시간의 거리는 오래된 듯 했다. 어디선가 굴러온 망측한 바이러스였다. 삶을 잠식해버린 코로나가 화근이었다. 안 그래도 힘든 노구로 어려웠던 만남의 행위들이 더 힘들어졌다. 안 본 사이 머리발 속에 백발이 더욱 무성해졌다. 볼펜으로 깊이 그린 듯한 입가 주름도 도드라졌다. 마스크로 감싼 입술이 열리자 세월은 더

10회 교육의 8할은 자신 탐구

<해로>에서는 요즘 토요일마다 교육공간이 뜨거워진다. 배움과 봉사의 열정이 급기야 베를린의 여름 온도까지 높여버린 듯하다. 8주간 열리는 <해로> 일반자원봉사자(Unterstuetzung im Alltag)를 위한 교육 모습이다. 사실 ‘코비드-19’의 여파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한 탓에 모집광고도 고사(固辭)했다. 그럼에도 뜻있는 이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애초 6명 정도를 예정했지만, 9명이 교육을 희망했다. 연령대는

9회 삶을 관통하는 행복의 공식

어느 해 겨울이었다. 여행처럼 훌쩍 떠난 한국행이었다. 순전히 어머니를 위한 행로였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사별 후, 기억의 흔적을 끌어안고 처절하게 몸부림쳤다. 어머니는 오랜 세월 묵혀 두었던 하모니카를 꺼내들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칠십 중반의 어머니는 ‘고향의 봄’의 음률 속에 마음을 내맡겼다. 그리고 반백

8회 생명 존엄을 위한 마지막 서류

독일은 역사적으로 나치시절, 정신지체장애자 및 유태인 등을 살아야 할 가치가 없는 존재들이라 명명하고 조직적으로 살해한 과거가 있다. 그러한 씻지 못할 과오 탓인지 생명 경시는 중요한 화두가 된다. 자살을 도와주거나 자살의 의도가 있음을 알고도 신고하지 않을 경우 법적 처벌을 면치 못한다. 그래서 일찍부터 존엄성을 가진 죽음의 대안으로